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III. 세계: 태어난 사람들
“이번 소설 『버려진 사람들』에서 작가님이 그린 지하 세계가 인상 깊었는데요. 실화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점에 독자들이 의아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실제로 지난 2년여 동안 발생한 실종 사건들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켰다는 평이 우세합니다. 먼저, 질문 드리지요. 실화에 기반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앵커는 펜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안경 너머에서 그녀의 눈빛은 계산된 순서에 따른 합의된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 픽션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출판사와 합의한 장치입니다. 독자들께서도 감안하고 읽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앵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그렇군요. 소설 속 지하 세계는 실제로 대단히 정교하게 묘사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경우, 실종된 시간 동안의 기억을 전혀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조 작가님이 그 기억의 공백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채우신 데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소설에서 사람들을 납치하여 지하 세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언뜻 세상을 선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 개개인에게 자성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다가 기억이 제거 당하지 않은 주인공이 지하 세계의 실체를 찾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다 여쭙지는 못합니다만, 실재하는 세계가 알고 봤더니 가상 현실이었다는 대목에서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와 유사한 시설을 만들고 얼마든지 인간에게 왜곡된 경험을 강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독자들의 우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기술이 인간과 로봇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실종 이유가 실제로 무엇이든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현실에 안도합니다. 기억이 단절된 점을 걱정하는 것보다 삶이 연속되는 점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상 세계에서 유목민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그 가상 세계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치닫고 있는 가상 현실 기술에 대한 우려를 공론화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예, 말씀 감사합니다. 아울러 이 책을 계기로 조 작가님의 이전 글들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점도 축하 드립니다. 이번에 재출간하신 책도 『버려진 사람들』에 이어 2억 다운로드를 돌파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 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 슈퍼 베스트셀러 작가 조민성 씨와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화면이 날씨 예보로 넘어가자 앵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민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다섯 번째 문이 열리고 뒤에서 네 번째 문이 닫혔다. 문 앞은 막다른 벽이었고 그 앞에서 민성을 맞은 사람은 파란 옷의 여자였다.
“당신은?”
“줄리아입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이지요.”
파란 옷의 여자가 미소를 짓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동안 볼드윈이 말했다.
“남자를 유혹하는 일 말인가요?”
“그건 수많은 줄리아들이 하는 여러 일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좀 실감나시겠군요. 줄리아?”
“당신이 이유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탐?”
줄리아가 웃으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민성이 양손으로 볼드윈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누구요?”
“이걸 놓아 주면 말하리다. 그것 말고도 할 얘기가 많으니 말이오.”
볼드윈은 민성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가시지요.”
조나단이 옆에서 민성과 볼드윈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벽 한 곳이 갈라져 있었고 그 안에 엘리베이터처럼 네모난 공간이 생겨났다. 줄리아가 앞장서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민성과 볼드윈, 조나단이 뒤를 이었다. 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의 반대쪽에 위치한 유리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민성은 자기도 모르게 유리 앞으로 다가섰고 줄리아가 민성의 왼쪽으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기둥에 매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바닥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강남에 있는 333층 빌딩의 유리 바닥 전망대에서 느꼈던 만큼의 깊이였다. 엘리베이터는 그 높이를 아찔한 속도로 내려갔다. 마치 자유 낙하를 하듯 떨어졌다. 민성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속도를 즐겼다.
지면에 가까워지면서 거대한 우주 왕복선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15층 높이의 에그 타워가 우뚝 서 있었다. 민성이 머물렀던 그 모양 그대로의 구릿빛 에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이곳이 바로 당신이 전에 있던 곳이지요. 동시에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전초 기지이기도 하구요. 내립시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민성은 내린 자리에 멈추어 머리 위로 아득하게 뻗어 올라간 천장에 시선을 던졌다. 지상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민성의 시선은 회전하여 에그에 닿았다.
“저 에그 중의 하나에 제가 있었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것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왜곡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당신이 창 밖으로 본 것은 우리가 당신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일 뿐입니다. 좀 걸을까요?”
볼드윈은 비행선들이 있는 곳으로 길을 잡았다. 민성은 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인류의 미래를 준비해 왔소.”
“우리요?”
“뉴홈.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의 이름입니다. 줄리아는 인공지능 로봇이자 인공지능 그 자체입니다. 어떤 인간도 어떤 AI도 그녀만큼 천재인 적은 없었지요. 사실 이제 인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미안합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한 것은 그저 그녀를 잠에서 깨운 것에 불과하지요. 그녀에 비하면 인간은 그저 침팬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조나단은 가상 현실의 아버지이지요. 열살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VR 스포츠 게임들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난 40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가상 현실 프로그램들을 사실상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존하는 모든 가상 현실 셰계들은 그가 발굴해서 키웠거나 투자한 개인과 회사들의 것이니까요. 조나단과 나는 20년 전에 처음 만났지요. 우리 둘은 생각이 잘 맞았어요. 그때부터 뉴홈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습니다. 차근차근 필요한 사람들을 모았고 우리의 계획을 실천할 준비를 해왔지요. 다행히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줄리아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지요.”
“뉴홈 프로젝트가 무엇입니까? 그게 에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지구는 황폐해졌습니다. 인간이 병들어 지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가 인류와 지구를 그렇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깨달음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어요. 세상은 이미 괴물이 되어 버렸고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그 괴물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사실상 모두가 괴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100억 마리의 괴물이 우글대는 곳, 그곳이 이 지구입니다. 우리는 3년 전 화성 지하에 기지를 완성했습니다. 화성의 자연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로봇들을 만든 줄리아의 덕입니다. 지상을 개발하기 전까지 지하 기지의 효용성을 알아낸 것도 줄리아의 힘입니다. 화성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풍부한 물을 확인했고, 대기의 성분을 바꿔 온도를 올리고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지상을 테라포밍하는데 50년 정도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현재 수준의 기술로 예상한 것이니 앞으로 더 단축될 여지도 충분합니다. 화성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토대로 화성 기지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조나단이 도왔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도 왕복 5개월로 이동 시간을 단축시킨, 줄리아와 조나단이 만든 저 비행선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지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한달 간 거주를 했었고, 돌아오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한 사람들로부터 날마다 소식을 전해 받고 있습니다. 뉴홈은 안전하고 완벽한 시설입니다. 지난 3년간의 검증을 통해 이미 더 많은 기지들을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각 기지는 완성 후 서로 연결될 것입니다. 모든 기지는 수용 인원을 천 명에 맞추어 지었습니다. 그 이상의 인원이 거주할 때 오히려 지구의 도시를 닮을 우려를 했기 때문입니다. 뉴홈 공동체는 사유 시설의 극소화와 공유 시설의 극대화 정신에 입각해 설계되었습니다. 모두가 불편함 없이 건강하게 취미와 여가 활동을 즐기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생산과 서비스 활동은 줄리아의 로봇들이 담당할 것입니다. 에그는 뉴홈에서 개인에게 제공되는 거주 시설의 실물 그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에게는 더 넓은 에그가 제공되지요. 우리는 우리가 선정한 화성 인류 예비 후보들이 에그에서 적응할 수 있느냐를 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현되는지 봐야 했습니다.”
볼드윈은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민성에게, 그 표정은 굳은 신념을 보유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느껴졌다. 민성이 보기에 특권 의식은 위험한 것이었다.
“당신은 저를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셈이군요.”
이 말에 줄리아와 조나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볼드윈은 빙그레 웃으며 민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오. 한 번 구경해 보시겠소?”
대답을 듣지도 않고 볼드윈은 첫 번째 뉴홈 비행선의 계단을 올라갔다. 줄리아와 조나단은 민성에게서 비켜나 대화를 나누었다. 민성은 볼드윈이 사라진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백 명이 두 달 동안 여행하는데 불편함 없이 꾸며져 있습니다. 개인별 침실과 식당, 영화관, 그리고 헬스, 스쿼시, 당구, 댄스를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부족한 것이 없지요. 자동 항법 장치가 갖춰져 있지만 로봇 조종사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구요. 승객들의 편의를 담당하는 서비스 로봇들과 의무팀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출입문 안쪽에서 민성이 오기를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볼드윈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비행선은 넓고 쾌적해 보였다. 이제 인류는 우주 유목민의 길에 들어서는 것인가, 민성은 잠시 생각했다.
“뉴홈은 지구의 시작과 근본부터 다릅니다. 지적인 생명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지상의 문명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늦어도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에 말이지요. 그 문명은 파괴적인 인류의 문명과 달라야 합니다. 인간과 지구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진 생태적인 문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별, 분야별로 이 신문명의 최초 조상들을 선정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맞게 줄리아가 찾아준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정확히 1천 명이 선정되었습니다. 당신도 그 중의 한 사람이구요. 소통의 장벽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영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모든 구성원에게 인공지능이 영어식 이름을 무작위로 부여했지요. 당신 이름이 탐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국가 없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매년 투표를 통해 기지별 5인의 뉴홈 위원들을 선정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입후보와 봉사의 기회를 갖도록 할 예정입니다.”
“왜 지금이어야 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대해 정부들이 눈치챈다면 가만히 지켜보지 만은 않겠지요. 하지만 알아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 기술적 성취의 수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들을 전 세계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정치의 이면을 보면 무서운 것은 정부들이 아니죠. 원하는 대로 돈을 찍어 내서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평화로운 지구,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구를 원하지 않습니다. 착취하고 억압하면서 쾌락을 독점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들이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한 지구의 멸망은 시간 문제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지구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신도 모두를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류를 태울 노아의 방주는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그곳에는 또 다시 예정된 파멸이 있을 뿐이니까요.”
“결국 당신이 추앙해 마지않는 인공지능이 고른 소수의 운 좋은 인류만 구원하겠다는 얘기군요. 줄리아는 신이고, 당신은 노아가 된 셈인가요?”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 이후의 인류 역사를 천국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주의 차가운 흙 아래에 완벽한 인류의 터전을 짓겠다는 당신의 신념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 곳은 아닌 것 같군요. 저는 원래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인간일뿐더러 인간의 완벽함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호의는 고마우나 사양하겠습니다.”
“멈춰!”
자리를 떠나려는 민성의 등 뒤에서 볼드윈의 고함이 들렸다. 민성이 뒤를 돌아보자 볼드윈이 상기된 표정으로 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넌 가야 해!”
“뭐라구요?”
인자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볼드윈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잡으며 민성에게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 밀어붙였다.
“너는 무조건 가야 한다. 네가 잘나서 너를 에그로 보내고 네가 잘나서 뉴홈으로 보내는 게 아냐. 너는 내가 가라면 가야 하는 거야.”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너는 내 말을 거역하면 안돼. 넌 나야. 내 젊은 시절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 내가 복제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돈 많은 것들, 권력자들 중에는 벌써 열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들도 많지. 죽을 병 걸리면 찾아오고 교통사고 나서 식물 인간 되면 찾아오고 그런 식으로 전 재산이라고 들고 찾아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한 달이면 복제된 게 수술실 밖으로 나가고 원래의 것은 바로 안락사 시켜서 소각 처리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지구는 영생을 꿈꾸는 인간들로 득실거려. 그 놈들이 죽지도 않고 끝도 없이 다 먹어 치우는데 이곳에 희망이 있을 것 같아? 내가 없어진다 해도 누군가는 내 기술을 알아내고 말 거야. 결국 시간 문제지. 넌 달라. 너는 내가 과학자의 꿈을 꿀 때부터 매년 내 세포를 냉동시켰다가 마침내 기술을 개발한 후 되살려낸 내 복제품이야. 넌 곧 나라고. 다른 것들은 연구소 화재로 모두 잃어 버리고 말았지. 따로 보관했던 너 하나만 살아남은 거야. 너는 가서 내 꿈을 완성해야 해. 네가 사랑했던 그 여자에게도 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둘이 뉴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 하지만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시피 그 여자는 돈과 힘을 좇는 다른 욕심꾸러기들과 다를 바 없어. 뉴홈은 새로운 인류의 터전이다. 인류 최고의 남녀들이 진정한 인간다움을 누리며 세대를 이어가야 해. 너에게도 너에게 맞는 여성이 뉴홈 공동체에 있을 것이다. 가서 가정을 꾸려. 인간의 희망을 보여줘. 인류를 우주 속으로 퍼뜨리라고! 조민성, 너는 이제 이 황무지 같은 지구를 떠나 그 쓸데없는 소설가 나부랭이 짓 때려치우고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해야 한단 말이다. 알겠어? 너만이 나의 기술을 온전히 전수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이제 한계가 왔어. 더 이상의 복제는 불가하다. 이젠 네가 맡아 줘야 해. 가서 나 조우진의 세상을 건설해. 너는 특별해. 예전의 나와 똑같지만 그 어떤 나에게도 없었던 재능까지 가지고 있어. 이 썩어 빠진 지구를 떠나 이제부터 우리의 세상을 만들라구!”
볼드윈은 조우진이 되어 민성 앞에서 울부짖었다. 민성은 늙은 자기 모습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결국 그럴듯한 신념으로 포장한 채 정신의 영생을 꿈꾸는 탐욕스러운 불완전 인간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