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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부를 쓰다, 맹상군 3

by 오종호

맹상군이 제나라로 복귀하자 민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어느 날, 풍환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맹상군을 찾아왔다.


"군께서 선비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가난한 이 한 몸 의탁코자 왔습니다."


풍환은 들고 온 검 한 자루에 새끼줄이나 감으며 시간을 보냈다. 생선 반찬이 안 나온다는 둥, 외출할 때 수레도 타지 못한다는 둥 객쩍은 소리나 지껄여대는 그였지만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좋은 숙소로 옮겨 주면서 그의 편의를 봐주었다.


민왕으로부터 1만 호의 설 지방 땅을 봉지로 받았으나 워낙 빈객의 수가 많았기에 조세 수입만으로는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맹상군은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리하여 설 땅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부업을 시작했는데 돈을 빌린 이들은 이자조차 제때 내지 않았다. 1년이 지나도록 수입이 발생하지 않은 탓에 고민하던 맹상군은 상등 객사에 머물고 있던 풍환을 불러 추심 업무를 맡겼다. 그는 별다른 재주는 없었으나 다른 빈객들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덕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설 땅에 도착한 풍환은 술과 고기를 넉넉하게 준비하고 맹상군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대접했다. 분위기가 흥겨워지면서 사람들의 경계심이 풀리자 풍환은 차용증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이자를 낼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자 지급일을 정해 주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차용증은 모두 걷어 불태워 버렸다. 풍환이 말했다.


"여러분.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준 것은 돈놀이를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빌린 돈을 밑천 삼아 생계를 개선할 방법을 도모하도록 도운 것이지요. 약간의 이자를 대가로 받고자 한 것은 수많은 빈객들을 먹이고 보살피는데 들어가는 운영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금 상황이 넉넉한 분들은 오늘 정한 날짜에 맞춰 이자를 정확히 내주십시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빚을 면제하였습니다. 자, 이토록 어지신 맹상군 나리를 위해 다같이 건배합시다. 그의 깊은 뜻을 저버리지 맙시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며 맹상군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맹상군은 화를 내며 풍환을 불러들여 차용증을 불태운 연유를 물었다.


"술과 고기를 준비한 것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그들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차용증을 소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환 여력이 되지 않는 이들을 10년 동안 쫒아다니며 닥달한다고 해도 그들은 돈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먼 곳으로 달아나 버리겠지요. 결국 이익은 없고 손해만 볼 것입니다. 더욱이 이익만을 탐하여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나 군께서는 나라와 백성들로부터 명망을 잃으실 테지요. 사정이 이러하여 어차피 쓸모없는 차용증을 불살라 군의 명성을 드높이고 설 땅의 민심을 얻은 것입니다. 군께서는 여전히 미심쩍은 점이 있으십니까?"


풍환의 말을 들은 맹상군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그를 칭찬하며 고마워했다.


사람들에게 베풀면 그들 중에는 반드시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채워 주는 귀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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