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구에 필요한 사람입니까?”
“질문의 요지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에기라고 이름을 밝힌 화면은 어느 날 말을 걸어왔다. 에기의 질문은 대화를 유도했고 대화의 내용에 따라 층의 나아감과 멈춤, 후퇴를 결정했다. 에기는 언제나 5분 안에 대화를 종료했다.
“말한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재능, 당신의 생각, 당신의 몸,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과 앞으로의 삶이 지구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것인지 묻고자 합니다.”
“만일 제가 수십억 마리의 개미 무리 중 한 마리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본능에 충실한 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개미의 삶에 대해 지구가 시비를 걸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입니다. 당신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인 한 나는 지구에게 죄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개미 한 마리가 개미 전체이듯 나 한 명도 인간 전체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끼친 해악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고 지구가 판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지구에서 한 것이라고는 단 두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는 글로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쉽게도 나는 내 글을 통해서는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도, 먹고 살 수도 없었습니다.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가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지요. 남의 글을 쓰면서 입에 풀칠하는 작가는 그렇다면 필요 없는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하는 대신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개미들이 있다면 불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개미 몇 백만 마리쯤 있다 해도 지구가 쓸모 없는 개미들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구에게는 그런 방식의 평가시스템이 없을 듯 합니다. 지구는 모든 생명체의 삶을 다 인정해 줄 것으로 봅니다. 결국 필요 여부는 지구 위에 인간들이 건설한 사회 시스템이 결정할 뿐이지요.
지구에서 나는 필요하지도 불필요하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공동체에게 쓸모 있는 일을 하고자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필요 차원에서 보면 나 하나 없어져서 내가 해왔던 일을,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군요. 지구 입장에서는, 필요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적으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에기는 아무 의견을 내지 않고 꺼졌다. 다음날 민성은 10층에 와 있었다. 하루 아침에 60층이나 강등되어야만 했던 까닭을 민성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 벌이는 일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고 논리도 없었다. 민성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자신의 할 일이 없음을 인정했다. 식사도, 대화의 단절도, 초보적인 질문들에 다시 노출되는 것도 다 수용해야 했다. 민성은 깊게 명상했다. 바람에 가끔 새소리가 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