彖曰 需 須也 險在前也 剛健而不陷 其義不困窮矣 需有孚光亨貞吉 位乎天位 以正中也 利涉大川 往有功也
단왈 수 수야 험재전야 강건이불함 기의불곤궁의 수유부광형정길 위호천위 이정중야 이섭대천 왕유공야
-<단전>에 말했다. 수는 기다림이다. 험한 것이 앞에 있으나 강건하여 빠지지 않으니 의로움이 곤궁해지지 않는다. '수유부광형정길'은 하늘의 위치에 자리하여 바르게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섭대천'은 나아가면 공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수천수괘의 수需가 기다림(須)의 뜻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수需에 들어 있는 이而가 수須(수염, 기다리다)와 관계가 깊다고 되어 있습니다.
'험險'은 외괘 감괘의 상입니다. '강건剛健'은 내괘 건괘, '함陷'은 외괘 감괘에서 나왔습니다. <설괘전> 7장에 '건건야乾健也, 건괘는 굳센 것이다'라고 했고, 같은 장에서 '감함야坎陷也, 감괘는 빠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럽지요. 어둠을 틈타 달콤한 유혹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뜻이 굳세면 그런 유혹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일단 유혹에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어둠의 노예가 되고 말지요. 그동안의 기다림을 정당화해 주었던 명분이 사라지면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가치관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처음의 그 한번이 중요하지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변절한 자들이 더욱 극악하게 반민주적 인사로 돌변하는 까닭은 지켜야 할 의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수유부광형정길'은 '믿음이 있으면 빛나고 형통하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라는 뜻이었지요.
'위호천위 이정중야'는 외괘에서 중정을 얻은 구오를 의미합니다.
'이섭대천'은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는 뜻으로, 꿋꿋한 태도로 실력을 기르며 기다렸다가 나아가면 공이 있게 된다(왕유공야)는 의미라고 풀어 주고 있습니다. 공을 현대적 용어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 권력이라는 세속적 성공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으니 역시 그냥 '공功'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성취, 업적의 뉘앙스로 생각하면 됩니다.
象曰 雲上於天 需 君子以 飮食宴樂
상왈 운상어천 수 군자이 음식연락
-<대상전>에 말했다. 구름이 하늘 위로 오르는 것이 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먹고 마시며 잔치하여 즐긴다.
<설괘전> 5장에 '노호감勞乎坎, 감에서 위로한다'고 했고, 8장에 '감위시坎爲豕, 감괘는 돼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감괘는 물이니 술의 상이 나오지요. 술을 준비하고 돼지도 잡아 잔치를 열어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감괘에 있습니다. 구오 아래 위로 육사와 상육이 있으니 구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상이 나옵니다.
기다림을 얘기하는데 하필이면 <대상전>에서는 생뚱맞은 느낌의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음식연락'에서 기다림의 처세술을 읽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이든 사회적인 차원이든 기다림의 과정을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승화시켜야 함을 비유한 것이라면 좀 과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기우제의 한 장면으로 읽힙니다. 하늘 위로 구름이 모여들어 있는데 아직 비는 오지 않습니다. 주역에 나오는 표현을 빌면 '밀운불우密雲不雨'의 상황입니다. 비를 기다리는 자세는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간절한 뜻을 하늘에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우제는 비를 기원하는 행위 자체보다 정성을 다하면 비가 올 것이라는 마음가짐과 비가 오지 않는 동안의 힘듦을 기꺼이 감내하는 기다림의 실천에 본질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비가 옵니다. 그 비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기다려야 할까요? 군자처럼 기다리라고 공자가 조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