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XXII

by 오종호

굵은 땀방울이 연신 눈동자 속으로 파고 들었다. 군살이 잡히지 않는 단단해진 몸이 민성은 마음에 들었다. 날마다 몇 시간씩 빠짐없이 실행한 명상 덕에 잡생각들도 말끔히 사라졌다. 언제고 사유의 바닥 깊은 곳으로 내려가 거침없이 유영할 수 있었다. 에그에 들어온 지 100일째의 자신의 변한 모습이었다.


“2044번, 좋아 보이는군요.”


에기는 민성이 명상 중일 때를 제외하고 아무 때나 수다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오후 3시 무렵이었다.


“고맙소.”


“당신은 마지막 질문을 통과했습니다. 이제 당신께 두 개의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내일 에그를 나갈 수 있는 권리와 그 권리를 누군가를 위해 양도할 권리.”


“이곳에 나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에기는 말없이 화면을 바꿨다. 화면은 또 다른 에그 안의 모습이었다. 반팔 유니폼 등에는 1984라고 씌어 있었다. 여자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두 손은 들어올려져, 에그를 만지작거리는 손가락들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오랫동안 감지 않아서인지 갈색 머리카락은 푸석해 보였다. 여자가 뒤로 돌아섰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히 주저앉았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당신과 같습니다.”


“이유는?”


“당신에게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지금 몇 층에 있습니까?”


“10층입니다.”


민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은희는 본디 약한 여자였다. 착하고 여린 심성이 가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짓눌려 겉으로 독하게 드러났을 뿐이었다. 그것을 드러내게 만든 것은 은희가 아니라 민성 자신이었다. 이제는 남의 여자였지만 은희를 에그에 버려둘 수는 없었다.


“저 여자를 대신 내보내 주십시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곳은 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에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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