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문이 열리고 뒤에서 네 번째 문이 닫혔다. 문 앞은 막다른 벽이었고 그 앞에서 민성을 맞은 사람은 파란 옷의 여자였다.
“당신은?”
“줄리아입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이지요.”
파란 옷의 여자가 미소를 짓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동안 볼드윈이 말했다.
“남자를 유혹하는 일 말인가요?”
“그건 수많은 줄리아들이 하는 여러 일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요. 목소리를 들으면 좀 실감나시겠군요. 줄리아?”
“당신이 이유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탐?”
줄리아가 웃으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민성이 양손으로 볼드윈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누구요?”
“이걸 놓아주면 말하리다. 그것 말고도 할 얘기가 많으니 말이오.”
볼드윈은 민성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가시지요.”
조나단이 옆에서 민성과 볼드윈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벽 한 곳이 갈라져 있었고 그 안에 엘리베이터처럼 네모난 공간이 생겨났다. 줄리아가 앞장서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민성과 볼드윈, 조나단이 뒤를 이었다. 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의 반대쪽에 위치한 유리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민성은 자기도 모르게 유리 앞으로 다가섰고 줄리아가 민성의 왼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기둥에 매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바닥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강남에 있는 333층 빌딩의 유리바닥 전망대에서 느꼈던 만큼의 깊이였다. 엘리베이터는 그 높이를 아찔한 속도로 내려갔다. 마치 자유낙하를 하듯 떨어졌다. 민성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속도를 즐겼다. 지상이 가까워지면서 우주선을 닮은 수십 기의 비행체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에는 10층 높이의 에그 타워가 서 있었다. 민성이 머물렀던 그 모양 그대로의 구릿빛 에그들이었다.
“이게 다 뭡니까?”
“당신이 전에 있던 곳이지요. 동시에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전초기지이기도 하구요. 내립시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민성은 내린 자리에 멈추어 머리 위로 아득하게 뻗어 올라간 천장에 시선을 던졌다. 지상의 이면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민성의 시선은 회전하여 에그에 닿았다.
“저 에그 중의 하나에 제가 있었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것은…”
“보이는 것을 왜곡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당신이 창 밖으로 본 것은 우리가 당신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뿐입니다. 좀 걸을까요?”
볼드윈은 비행선이 틀림없을 물체들이 있는 곳으로 길을 잡았다. 비행체들은 돔 야구장을 축소해 놓은 듯한 외관을 띠고 있었다. 민성은 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인류의 미래를 준비해 왔소.”
“우리요?”
“뉴홈.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의 이름입니다. 줄리아는 인공지능 로봇이자 인공지능 그 자체입니다. 어떤 인간도 그녀만큼 천재인 적은 없었지요. 사실 이제 인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미안하지요.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한 것은 그저 그녀를 잠에서 깨운 것에 불과하구요. 그녀에 비하면 인간은 그저 침팬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조나단은 가상현실의 아버지지요. 열살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VR 스포츠 게임들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난 40년동안 지구상의 모든 가상현실 프로그램들을 사실상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존하는 모든 콘텐츠들은 그가 발굴해서 키웠거나 투자한 개인과 회사들의 것이니까요. 조나단과 나는 20년 전에 처음 만났지요. 우리 둘은 생각이 잘 맞았어요. 그때부터 뉴홈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습니다. 차근차근 필요한 사람들을 모았고 우리의 계획을 실천할 준비를 해왔지요. 다행히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줄리아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지요.”
“뉴홈 프로젝트가 무엇입니까? 그게 에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지구는 황폐해졌습니다. 인간이 병들어 지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가 인류와 지구를 그렇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깨달음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어요. 세상은 이미 괴물이 되어버렸고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그 괴물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사실상 모두가 괴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100억 마리의 괴물이 우글대는 곳, 그곳이 이 지구입니다.
우리는 3년 전 화성 지하에 기지를 완성했습니다. 화성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로봇들을 만든 줄리아의 덕입니다. 지상을 개발하기 전까지 지하기지의 효용성을 알아낸 것도 줄리아의 힘입니다. 화성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풍부한 물을 확인했고, 대기의 성분을 바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지상을 변화시키는데 100년 정도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현재 수준의 기술로 예상한 것이니 앞으로 더 단축될 여지도 충분합니다. 화성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토대로 화성 기지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조나단이 도왔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도 왕복 5개월로 이동시간을 단축시킨, 줄리아와 조나단이 만든 저 비행선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지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한달 간 거주를 했었고, 돌아오지 않고 머물기로 결정한 사람들로부터 날마다 소식을 전해 받고 있습니다. 뉴홈은 안전하고 완벽한 시설입니다. 지난 3년간의 검증을 통해 이미 더 많은 기지들을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각 기지는 완성 후 서로 연결될 것입니다. 모든 기지는 수용인원을 천 명에 맞추어 지었습니다. 그 이상의 인원이 거주할 때 오히려 지구의 도시를 닮을 우려를 했기 때문입니다. 화성 공동체는 사유시설의 극소화와 공유시설의 극대화 정신에 입각해 설계되었습니다. 모두가 불편함 없이 건강하게 취미와 여가활동을 즐기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생산과 서비스 활동은 줄리아의 로봇들이 담당할 것입니다. 에그는 뉴홈에서 개인에게 제공되는 거주시설의 실물 그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정한 화성 인류 예비후보들이 에그에서 적응할 수 있느냐를 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현되는지 봐야 했습니다.”
볼드윈은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민성에게, 그 표정은 굳은 신념을 보유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느껴졌다. 민성이 보기에 특권의식은 위험한 것이었다.
“당신은 저를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셈이군요.”
이 말에 줄리아와 조나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볼드윈은 빙그레 웃으며 민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오. 한 번 구경해 보시겠소?”
대답을 듣지도 않고 볼드윈은 첫 번째 비행선의 계단을 올라갔다. 줄리아와 조나단은 민성에게서 비켜나 대화를 나누었다. 민성은 볼드윈이 사라진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백 명이 두 달 동안 여행하는데 불편함 없이 꾸며져 있습니다. 개인별 침실과 식당, 헬스장, 그리고 스쿼시, 당구, 댄스를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부족한 것이 없지요. 자동항법 장치가 갖춰져 있지만 로봇 조종사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구요. 승객들의 편의를 담당하는 서비스 로봇들과 의무팀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출입문 안쪽에서 민성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볼드윈이 설명했다. 비행선은 넓고 쾌적해 보였다. 이제 인류는 우주 유목민의 길에 들어서는 것인가, 민성은 잠시 생각했다.
“뉴홈은 지구의 시작과 근본부터 다릅니다. 지적인 생명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지상의 문명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 말이지요. 그 문명은 파괴적인 인류의 문명과 달라야 합니다. 인간과 지구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진 생태적인 문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별, 분야별로 이 신문명의 최초 조상들을 선정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맞게 줄리아가 찾아준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2만여 명이 에그에 다녀갔고 정확히 1천명이 선정되었습니다. 당신도 그 중의 한 사람이구요. 소통의 장벽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영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모든 구성원에게 인공지능이 영어식 이름을 무작위로 부여했지요. 당신 이름이 탐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국가 없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매년 투표를 통해 10인의 뉴홈 위원들을 선정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입후보와 봉사의 기회를 갖도록 할 예정입니다.”
“왜 지금이어야 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대해 정부들이 눈치챈다면 가만히 지켜보지 만은 않겠지요. 하지만 알아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 기술적 성취의 수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들을 전세계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정치의 이면을 보면 무서운 것은 정부들이 아니죠. 원하는 대로 돈을 찍어내서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평화로운 지구,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구를 원하지 않습니다. 착취하고 억압하면서 쾌락을 독점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들이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한 지구의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지구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신도 모두를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류를 태울 노아의 방주는 만들 수도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그곳에는 또 다시 예정된 파멸이 있을 뿐이니까요.”
“결국 당신이 추앙해 마지않는 인공지능이 고른 소수의 운 좋은 인류만 구원하겠다는 얘기군요. 줄리아는 신이고, 당신은 노아가 된 셈인가요?”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 이후의 인류 역사를 천국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주의 차가운 흙 아래에 완벽한 인류의 터전을 짓겠다는 당신의 신념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 곳은 아닌 것 같군요. 저는 원래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인간일뿐더러 인간의 완벽함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호의는 고마우나 사양하겠습니다.”
“멈춰!”
자리를 떠나려는 민성의 등 뒤에서 볼드윈의 고함이 들렸다. 민성이 뒤를 돌아보자 볼드윈이 상기된 표정으로 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넌 가야 해!”
“뭐라구요?”
인자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볼드윈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잡으며 민성에게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 밀어붙였다.
“너는 무조건 가야 한다. 네가 잘나서 너를 에그로 보내고 네가 잘나서 뉴홈으로 보내는 게 아냐. 너는 내가 가라면 가야 하는 거야.”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너는 내 말을 거역하면 안돼. 넌 나야. 내 젊은 시절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 내가 복제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돈 많은 것들, 권력자들 중에는 벌써 열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들도 많지. 죽을 병 걸리면 찾아오고 교통사고 나서 식물인간 되면 찾아오고 그런 식으로 전 재산이라고 들고 찾아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한 달이면 복제된 게 수술실 밖으로 나가고 원래의 것은 바로 안락사 시켜서 소각처리 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지구는 영생을 꿈꾸는 인간들로 득실거려. 그 놈들이 죽지도 않고 끝도 없이 다 먹어 치우는데 이곳에 희망이 있을 것 같아? 내가 없어진다 해도 누군가는 내 기술을 알아내고 말 거야. 결국 시간 문제지.
넌 달라. 너는 내가 과학자의 꿈을 꿀 때부터 매년 내 세포를 냉동시켰다가 마침내 기술을 개발한 후 되살려낸 내 복제품이야. 넌 곧 나라고. 다른 것들은 연구소 화재로 모두 잃었지. 따로 보관했던 너 하나만 살아남은 거야. 너는 가서 내 꿈을 완성해야 해. 네가 사랑했던 그 여자에게도 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둘이 뉴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 하지만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시피 그 여자는 돈과 힘을 좇는 다른 욕심꾸러기들과 다를 바 없어. 뉴홈은 새로운 인류의 터전이다. 인류 최고의 남녀들이 진정한 인간다움을 누리며 세대를 이어가야 해. 너에게도 너에게 맞는 여성이 뉴홈 공동체에 있을 것이다. 가서 가족을 꾸려. 인간의 희망을 보여줘. 인류를 우주 속으로 퍼뜨리라고. 가족에게 맞는 새로운 에그들은 줄리아의 친구들이 만들어 줄 것이다.
조민성, 너는 이제 이 황무지 같은 지구를 떠나 그 쓸데없는 소설 나부랭이 때려치우고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해야 한단 말이다. 알겠어? 너 만이 나의 기술을 온전히 전수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이제 한계가 왔어. 더 이상의 복제는 불가하다. 이젠 네가 맡아 줘야 해. 가서 나 조우진의 세상을 건설해. 너는 특별해. 예전의 나와 똑같지만 그 어떤 나에게도 없었던 재능까지 가지고 있어. 이 썩어빠진 지구를 떠나 이제부터 우리의 세상을 만들라구!”
볼드윈은 조우진이 되어 민성 앞에서 울부짖었다. 민성은 늙은 자기 모습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결국 그럴듯한 신념으로 포장한 채 정신의 영생을 꿈꾸는 탐욕스러운 불완전 인간일 뿐이었다.
“감동적인 이야기군요, 볼드윈, 아니 조우진씨. 당신이 지금부터 예의를 갖춘다면 당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요.”
“그, 그러겠나?”
“냉정을 찾으시지요. 제가 당신의 제안을 좀더 매력적으로 바꿔 보겠습니다. 제 세포를 내어드리지요. 저를 복제하십시오. 그 친구에겐 당신의 삶과 당신의 기억을, 당신의 기술을 충분히 전수하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세상에 풀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익히게 하지 말고 말이지요. 당신의 뉴홈에 더 적당한 자는 아마 그 친구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지식과 기술을 동시에 제게 전수하십시오. 당신의 유전자를 전수받았다면 아마도 익히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그래서?”
“당신은 영생을 누리시고, 저는 이곳에서 영생을 꿈꾸는 자들을 처리해 나가겠습니다. 당신의 에그라면 그들이 남은 생을 보낼 곳으로는 충분할 듯합니다만… 아마 이 제안이 당신들의 동료들에게 당신에 대한 신뢰를 절대적으로 만드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들도 원본과 복제본 중에서 누구를 화성에 보낼 것인지 선택하게 하세요. 좋은 반응이 나올 겁니다. 위험 높은 우주 유목민으로 시작하기보다는 화성과 우주에 동시에 정착해서 사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구를 포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너무 위험해 보인단 말입니다. 화성이란 곳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도 많을 테고 말이지요. 아무리 줄리아가 천재라 하더라도 화성에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어떤 한계와 맞닥뜨릴지 압니까? 오래 살다 보면 우리 중에 지구의 최고 권력자가 될 방법도 찾아낼 수 있겠죠. 경쟁자들을 모조리 처 없애버리면 되니까요. 화성의 환경이 지금 세워둔 목표치에 올라섰을 때 그때 상황에 맞게 지구를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다름아닌 당신의 유전자에게 그 정도의 기회를 제공할 신뢰는 갖고 계시겠지요?”
조우진의 표정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말 미안하지만 유전자라는 것도 환경에 따라 업그레이드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소. 당신 나이 때 나는 그런 눈을 갖추지 못했소.”
“내가 세상에 실재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온 것은 상상, 아니 몽상뿐입니다.”
“상상과 몽상이라… 그럴 듯 하군요. 그것이 같은 인간을 다르게 만드는 요인일 수도 있겠지요. 내게 시간이 많지 않으니 당장 복제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일단 당신부터 말이지요, 조민성, 마이 프렌드.”
“그리 하시지요.”
“갑시다. 나보다 나은 나를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구려.”
조우진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비행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엔 힘이 붙어 있었다. 민성은 그의 뒤에서 지드가 보고 싶어졌다. 대화를 나누던 줄리아와 조나단이 조우진에게 다가왔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있는 곳이 산 아래라는 것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