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V

by 오종호

회사의 상장계획 발표는 직원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회사 지분 100%의 소유주였던 사장이 직원들에게 액면가 5천원으로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상장 시초 예상가격이 약 5만 5천원이라는 증권사 직원의 설명이 뒤따르자 회사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시바르는 인생 한 방이라는 말의 깊은 뜻을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시바르가 맥주와 아이들 과자, 그리고 과일들을 잔뜩 사 들고 와서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며 모든 적금과 보험(뻥카에게 가입한 것 하나를 포함해서)을 깨서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고 역설하자 시바르의 와이프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제 적금 들 돈 갖다 준 적 있냐, 인간아?”


마음이 급해진 시바르는 다음날 점심을 건너뛴 채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지만 언뜻 와이프의 표정을 닮아 어릴 때 장모님이 잃어버린 처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은행원은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택담보대출에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풀로 쓰고 계셔서 사장님께 해드릴 수 있는 금액이 정확히 10만 5천원인데 이거라도 실행해 드릴까요?”


회사에서 말한 납입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시바르는 침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였더니 상체가 점점 방글라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었고, 아침마다 머리를 감으면 양손가락에 머리카락이 수북이 걸려 나와 이러다가 머지않아 뻐꺼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사장은 부사장대로 이대로 기회를 놓칠 것이냐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직원들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혹시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라도 할까 싶어 눈이 마주치면 잽싸게 고개를 돌리고 일하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와이프는 천지개벽이 눈앞에 있는데도 여전히 무심한 듯 아이들이 남겨놓은 찬밥을 물에 말아 수저에 푹푹 담은 후 김치를 얹어 출렁이는 살의 세계로 가차없이 떠나 보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뻐꺼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방글라는 동남아 여행을 떠난다고 문자를 보낸 다음부터 전화를 계속 꺼놓은 상태였다. 고향 사람들을 만난 기분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었다.


토요일 특강이 있기에 절대 술을 마시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얘기에 참여하겠다고 뻐꺼지는 선언했다. 술을 팔지 않는 커피숍에서 수학으로 도통한 뻐꺼지를 설득시킨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할 리 없었다. 뻐꺼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어쩔 수 없이 보드카 석 잔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붓고 칡즙까지 적당히 더하고 나자 시바르는 겨우 안심이 되었지만 가짜 커피를 마신 뻐꺼지가 기절한 후 깨어난 것은 다음날 저녁이 다 된 병원 응급실에서였다.


병원 응급실에 뻐꺼지를 던져 놓고 나서 어떻게 된 일이냐는 간호사의 말에 시바르는 소주 두 잔 분량의 폭주로 인한 충분한 수면을 처방하고 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시바르의 다음날 아침의 모습은 뻐꺼지와 방글라를 한데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한 몰골이었다. 간밤에 자꾸만 무거운 몸으로 덮쳐오던 와이프가 자신의 몸에 돌출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무슨 짓을 더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여하튼 체형은 시바르의 것이 아니었지만 입안에서는 계속 ‘시바르’가 맴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기가 여전히 자기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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