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혔던 것이 풀리니 작게 주고 크게 받는다. 태평성대다.
변화의 가능성이 제거된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상실한 개인 역시 죽은 사람입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믿고 변화를 일으킬 동력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듯, 자신이 나아갈 길을 통찰하여 인생을 혁명할 실마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기력으로 석화石化된 감정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모든 것은 기필코 변화한다는 완전무결한 진리를 떠올려, 마음 안의 하늘과 땅을 뒤집을 소용돌이를 일으켜 내야 할 것입니다.
泰 小往大來 吉 亨
태 소왕대래 길 형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할 것이다.
<서괘전>에 '履而泰然後安 故受之以泰 이이태연후안 고수지이태'라고 했습니다. '분별 있게 실천하여 태평하게 된 후에 편안해지므로 지천태괘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눈에 하늘은 위에 있어야 하고 땅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여서 "왜 하늘은 위에만 있어야 하고, 땅은 아래에만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래 그랬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왕위는 왕가의 핏줄을 받은 자들끼리 영원히 세습하는 것'이라는 명제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면 민주주의는 태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역은 변화를 얘기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주역 공부를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천태괘가 보여주는 것은 천지가 뒤집어질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정체된 시공을 역동적으로 움직여 만물에게 싱싱한 새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변화의 낙천성입니다.
하늘은 위에 땅은 아래에 머물러 있는 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의 속은 실상 썩은 것과 다름없다고 주역은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는 안정성, 그것은 곧 죽음의 기운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입니다.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는 사실은 곧 새로운 천지개벽에 대한 암시입니다. 천지가 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위의 땅은 내려오고 아래의 하늘은 올라가며 만나 뒤섞입니다. 지천태괘를 역지사지와 혁명의 괘로 읽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도전괘의 관계에 있는 12괘 천지비괘와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보다 선명해집니다.
외괘 곤괘는 모두 음으로 구성되어 소인小人이고 작은 것입니다. 내괘 건괘는 전부 양으로 구성되어 대인大人이고 큰 것입니다. 내괘의 양이 점차 자라나 외괘의 음을 잠식해 가는 상으로 '소왕대래'의 의미가 됩니다.
11, 12괘 지천태괘와 천지비괘, 63, 64괘 수화기제괘와 화수미제괘는 함께 읽을 때 주역이 전해주는 변화의 긍정성, 곧 무상無常의 희망성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