彖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地不交 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단왈 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 즉시천지불교 이만물불통야 상하불교 이천하무방야 내음이외양 내유이외강 내소인이외군자 소인도장 군자도소야
-<단전>에 말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때가 아니다. 군자가 바르게 해도 이롭지 않다. 큰 것은 가고 작은 것이 오는 것'은 천지가 섞이지 못해 만물이 불통하기 때문이다. 상하가 어울리지 못해 천하에 나라가 없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안은 음이고 밖은 양이며, 안은 순하고 밖은 굳세며, 안은 소인이고 밖은 군자이니, 소인의 도는 자라고 군자의 도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천지비괘의 <단전>은 11괘 지천태괘의 그것과 동일한 형식을 가졌고 내용만 다릅니다. 따라서 지천태괘의 <단전>과 함께 읽을 때 두 괘 <단전>의 대비적인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천건괘에서 음이 점차 자라나 천지비괘에 이르렀습니다. 음이 더 자라면 20괘 풍지관괘, 23괘 산지박괘, 2괘 중지곤괘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인도장 군자도소야'의 의미가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해설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무방無邦 즉 나라가 없다는 뜻은 나라를 공동체로 이해할 경우 약육강식의 패권적 질서가 판을 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또는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불교不交, 불통不通이야말로 정의실현이나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인 장애라고 보는 것이지요."
'방邦'을 '조직'으로 보면 상하가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의미를 우리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즉, 상하 간의 위계적 질서를 강조하여 억압과 굴종의 문화가 만연한 조직은 구성원들의 창발성을 질식시킴으로써 점차 혁신의 동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망해 없어지겠지요.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체육계, 어린 자녀를 학대하여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하는 가정은 모두 존재가치가 없는 조직과 같습니다. 체육이든 양육이든, 그것의 본질적 가치는 사랑에 있습니다. 선수를 키우고 자식을 기르는 일이 개인의 신체를 학대하고 정신을 억압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에서 상위를 차지한 짐승으로 스스로를 규정한 자들에게 관용은 사치입니다.
아울러 나이 한 살 가지고도 선후배를 논하는 썩은 문화를 반드시 도려내야 합니다. 저는 이 문화를 일제가 우리의 의식에 잔인하게 주입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동갑同甲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나이가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甲子가 같다'는 뜻입니다. 육십갑자는 갑자甲子에서 출발하여 계해癸亥로 마감하는 60년의 순환 주기를 갖고 있는 우주시간표와 같습니다. 태어난 해의 육십갑자가 60년 만에 되돌아오는 것을 회갑回甲이라고 하는 이유지요. 육십갑자는 갑자甲子, 갑술甲戌, 갑신甲申, 갑오甲午, 갑진甲辰, 갑인甲寅의 여섯 개의 순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동갑이란 동일한 육십갑자 순旬에 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위아래로 열살은 얼마든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이라는 속뜻이 나오게 됩니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서열 문화의 원흉인 '나이에 대한 오해'를 하루빨리 걷어내야 합니다. 이 구시대의 반동적 유산이 끼치는 해악이 너무도 큽니다.
象曰 天地不交 否 君子以 儉德辟難 不可榮以祿
상왈 천지불교 비 군자이 검덕피난 불가영이록
-<대상전>에 말했다. 하늘과 땅이 섞이지 않는 것이 비다. 군자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덕을 숨김으로써 어려움을 피해야 한다. 벼슬하여 영화를 누려서는 안 된다.
'군자이君子以'는 '군자는 이를 본받아'와 같이 해석하지만 '천지불교'가 부정적인 내용이므로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의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검儉은 검소하다는 뜻이니 '덕을 검소하게 한다'는 '검덕儉德'은 자신의 덕망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이지요.
소인들이 장악한 세상이니 덕망 있는 군자일수록 핍박을 받을 것이 당연합니다.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따귀를 맞은 독립투사 김원봉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의 월북에 대해 사후적으로 빨갱이 낙인을 찍는 파렴치한 짓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기 잇속만 차리는 수많은 소인배들이 활개치는 세상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얘기를 귀에 담아 새기는 것으로 마감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해방 공간의 조국 풍경 안에 가슴 뜨거운 지성인으로 있었다면 아마 우리도 김원봉의 길을 뒤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쓰레기들이 처단되지 않고 다시 완장을 찬 채 돌아와 정의로운 이들을 핍박하는 세상에서, 거꾸로 치솟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의 피가 아닐 것입니다.
"...천지비괘는 한마디로 폐색閉塞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상황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현대사를 통하여 줄곧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였지요. 이러한 폐색의 상황에서는 지혜를 숨기고 어리석음(愚)을 가장하여 권이회지卷而懷之하며, 나아가기(進)보다는 물러나기(退)를 택하여 강호江湖에 묻히는 것이 처세處世의 일반적 방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