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관점을 버리고 군자의 눈으로 조감하라.
初六 童觀 小人无咎 君子吝
象曰 初六童觀 小人道也
초육 동관 소인무구 군자린
상왈 초육동관 소인도야
-어린 아이처럼 보는 것이니 소인에게는 허물이 없으나 군자라면 인색해질 것이다.
-초육이 어린 아이처럼 보는 것은 소인의 도다.
초육은 실위, 실중한 자리입니다. 사효가 음이라 정응하는 양도 없습니다. 관觀의 가장 낮은 단계로, 자기 분수를 지키지도 못하고, 중도를 알지도 못하며, 군자와 같은 사람의 지도도 받지 못하여 생각이 짧고 유치하여 마치 어린 아이의 소견과도 같은 작은 인식 수준의 소유자입니다.
그리하여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 소인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군자가 그와 같은 소인의 안목을 갖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더욱 부족하게 만들 뿐입니다. 인吝은 '아낀다'는 뜻이니 자기 반성에 인색하고 변화를 주저하는 태도이기에 흉凶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내괘 곤괘에서 인吝, 초육이 동할 때의 내괘 진괘에서 군자의 의미가 각각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평소 군자와 같았던 사람도 작은 이익에 연연하며 인색하게 굴기 쉽습니다. 생활이 옹색해지는 것은 흠이 아니지요. 성철 스님은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가난부터 먼저 배우라(학도선수학빈學道先須學貧)'고 했습니다. 옛 조사들의 가르침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맑은 가난, 곧 청빈淸貧 속에서 진정한 도의 배움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사회라는 이름의 속세에서 가정을 이루고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기에 적당한 물질적 기반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반의 구축을 위해 개인의 명예를 무너뜨릴 정도로 비굴하게 이익을 추구할 이유는 없습니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버티는 것은 결코 체면을 차리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정체성을 잃고 정신이 무너질 때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회의가 본격적으로 싹트는 법입니다.
관觀에는 '황새'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