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이 피어났으니 수신의 자세로 나아가라.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象曰 不遠之復 以脩身也
초구 불원복 무지회 원길
상왈 불원지복 이수신야
-머지않아 회복하여 후회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으니 매우 길할 것이다.
-머지않아 회복하는 것은 수신하기 때문이다.
복復은 회복回復으로 원 상태를 되찾는 것입니다. 또한 복귀復歸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반복反復으로 순환의 도를 되풀이하는 것이고, 부활復活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남겨 두었던 23괘 산지박괘 상구의 '석과碩果'가 2괘 중지곤괘의 대지에 씨앗으로 묻혀 지뢰복괘 초구의 새 생명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가치와 본성의 회복이고, 초심과 당위當立로의 복귀이며, 생사와 종시의 반복이고, 희망과 용기의 부활입니다.
이러한 복의 여러 상징 중 공자는 마음의 수양과 정신의 수련, 행실의 교정을 통한 가치와 본성의 회복에 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의 뜻은 <계사전 하>에서 더 상세히 드러납니다.
'子曰 顔氏之子 其殆庶幾乎 有不善 未嘗不知 知之未嘗復行也 易曰 不遠復 无祗悔 元吉 자왈 안씨지자 기태서기호 유불선 미상부지 지지미상부행야 역왈 불원복 무지회 원길'이 그 대목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거의 완전하도다! 선하지 않음이 있으면 알지 못함이 없었고 알면 다시는 행하지 않았다. <<주역>>에 말했다. '머지않아 회복하여 후회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으니 매우 길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불선不善을 들고 복復을 얘기했으니 복의 의미가 가치와 본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명확합니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로 서른둘에 요절했지요. 공자는 <<논어>>에서 안회의 인仁을 극찬한 바 있습니다. 안회를 복성공復聖公이라고 부르는데 '인을 회복한 성인과 같은 사람'의 뜻입니다.
초구는 지뢰복괘의 유일한 양으로 맨 처음에 있으니 23괘 산지박괘의 상구에서 지뢰복괘의 초구에 도달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안회의 사례에서 보듯 잘못을 범해도 재빨리 알아채고 반성하여 고치는 것이니 후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잘못된 일, 선하지 않은 일임을 알면 아예 시작하지 않을 것이니 뉘우칠 일이 아예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범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것이 범인들의 보편적 행동이지요.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뉘우치지 않거나, 아예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거나, 자신은 옳고 상대방만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도 받아주지 않는 일도 흔합니다. 온갖 논리로 정적을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치에서조차 사안에 따라서는 상대 당을 높이고 자당의 잘못을 인정할 때 품격 높은 정쟁이 가능해집니다. 남녀의 사랑이 흔들리며 위기에 처하는 것 역시 상대의 본성과 관계의 본질을 보는 대신 자기 기준에 상대방을 억지로 맞추려 하거나 상대방의 진심을 외면하고 자기 판단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안회가 인의 회복자가 된 것은 안회의 복심腹心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공자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런 공자조차 완벽한 인간이지는 않았습니다.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고생하며 일주일 간 쫄쫄 굶고 있었던 때의 일입니다. 안회는 스승의 끼니를 잇기 위한 쌀 동냥에 이골이 난 제자였지요.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 밥을 지었는데 낮잠을 자다 깬 공자의 눈에 언뜻 안회가 갓 지은 밥을 손으로 한 줌 집어 먹는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안회가 밥상을 차리자 공자가 말하지요. "방금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었다. 깨끗한 이 밥으로 제사를 먼저 지내야겠구나." 안회가 답합니다. "안 됩니다. 솥에 재가 들어가 밥이 좋지 않게 되어 버려야겠기에 제가 한 줌 걷어 먹었습니다." 즉, 안회는 더러워진 밥을 스승에게 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기에 먹은 것이지요. 분명 자기가 먹은 만큼은 자신의 양에서 제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공자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所信者目也 而目猶不可信 所恃者心也 而心猶不足恃 소신자목야 이목유불가신 소시자심야 이심유부족시 / 믿는 것이 눈인데 오히려 눈을 믿을 수 없고, 의지하는 것이 마음인데 마음은 오히려 의지하기 부족하구나!"
<<여씨춘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사례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인군자라도 일주일씩 굶주리다 보면 이성이 본능에 잠식되는 것이 차라리 당연하게 느껴지지요. 오히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곧바로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스승이라는 자가 한심하기 그지없군'과 같이 안회가 생각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갔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공자가 '후회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은' 사람임을, 안회가 인간적인 면모로 그 사람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큰 그릇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공자가 초구 효사에서 '수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구가 동하면 2괘 중지곤괘가 되기에 시생했던 일양이 다시 흩어지는 상이 됩니다. 피어났던 생명의 기운이 다시 사그라드는 것과 같지요. 일이 진척되었다가 흐지부지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점을 쳐서 지뢰복괘의 초효동動을 얻는 것은 과히 좋을 것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중지곤괘의 초효동을 얻을 때 지뢰복괘 초구 효사의 뜻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독립군 태극기 불원복'으로 검색하면 '不遠復'이 쓰인 태극기를 볼 수 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바쳐 투쟁한 위대한 전사들의 넋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곳에서는 따뜻한 쌀밥 원없이 드시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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