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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26. 2020

말의 유산

<영화> 가슴에 위대한 정신의 씨앗을 심으라.


Mufasa: Everything you see exists together in a delicate balance. As a king, you need to understand that balance and respect all the creatures, from the crawling ant to the leaping antelope.

Simba: But dad, don't we eat the antelope?

Mufasa: Yes, Simba, but let me explain. When we die, our bodies become the grass, and the antelope eat the grass. And so we are all connnected in the great Circle of Life.


무파사: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섬세한 균형을 이루며 함께 존재하고 있단다. 왕으로서 넌 그 균형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하지. 기어다니는 개미에서부터 껑충 뛰어다니는 영양까지 말이다.

씸바: 하지만 아빠, 우리 영양은 먹지 않나요?

무파사: 그렇긴 하지만, 씸바, 아빠가 설명해 주마.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몸은 풀이 되고, 영양이 그 풀을 먹는단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위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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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ba: Dad?

Mufasa: Hmm?

Simba: We're pals, right?

Mufasa: Right.

Simba: And we'll always be together, right?

Mufasa: Simba, let me tell you something my father told me. Look at the stars. The great kings of the past look down on us from those stars. 

Simba: Really? 

Mufasa: Yes. So whenever you feel alone, just remember that those kings will always be there to guide you. And so will I.


씸바: 아빠?

무파사: 응?

씸바: 우리 친구지, 그치?

무파사: 그럼.

씸바: 우리 언제까지나 함께할 거지, 그치?

무파사; 심바, 할아버지께서 아빠에게 들려주셨던 얘기를 해주마. 저 별들을 보렴. 과거의 위대한 왕들이 저 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단다.

씸바: 정말?

무파사: 그래. 그러니 언제든 외로울 때면, 왕들이 늘 저기에서 너를 인도해 줄 거라는 점을 기억하거라. 물론 아빠도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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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제대하고 다시 자취생으로 돌아간 뒤 적적했던 어느 날, 비디오 가게에서 <라이온킹>을 빌려다 보았습니다. 그날 가슴에 박힌 이 애니메이션 두 대목의 대사는 지천명의 나이에도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에게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지혜의 말을 애니메이션 속 사자에게 들으면서 "훗날 나는 자식에게 어떤 말을 유산으로 남겨 줄 것인가?", "세상에 어떤 말을 나의 것으로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 본 후, 가끔씩 그 순간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고는 합니다.


이때의 강렬한 경험은 좋은 책과 영화를 찾아 읽고 보며 가슴에 박히는 문장과 대사를 기록하고 외우는 습관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군가는 "겨우 <라이온킹>을 보면서 이깟 대사에 감동 받다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문장과 대사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올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 것이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인연 없이는 서로 만나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질과 성향,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가치관과 인생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어만이 들어와 뿌리내리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는 암암리에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면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언어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대신 자식이 걸어갈 인생길에서 만날 세상과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길러주는 언어, 찾아오기 마련인 좌절과 절망의 순간을 딛고 일어날 힘과 용기를 키워주는 언어를 선물처럼 들려주어야 합니다.  


부모나 교사로부터 그런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가능성은 자기 스스로 키우는 것이지요. 척박한 절벽 틈에서 태어난 소나무는 중력을 거스르며 누워 자라는 법을 터득하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경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환경을 탓하고 능력을 탓하고 나이를 탓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에너지는 방전됩니다. 아무도 가슴 깊이 뿌리박히는 말을 유산으로 남겨 주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이 심어야 합니다. 만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연의 말들이 책과 영화 속 도처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바뀌기를 욕심내지 않는다면, 10년 후를 기꺼이 기약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를 갖고 있다면, 우선 지구라는 사막 위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도달할 오아시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것입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하건 약간 늦어지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오아시스에 도착하는 순간 후배 여행자들을 위해 입구에 적어 놓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가슴에 뿌려졌던 씨앗이 열매 맺은 말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당신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산이 되겠지요. 


사막을 걷는 동안 발자국과 발자국에 내려앉은 별과 별 사이의 영겁의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모래 위의 여정이 마무리될 무렵, 말은 저절로 가슴 밖으로 샘물처럼 솟아날 것입니다. 지나온 발자국은 사막의 바람에 흩어져 아무도 당신이 사막의 저편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해도 당신만은 당신만의 말을 남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욕망과 야망을 품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자욱할 때는 잠시 마스크를 쓰고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의 진심을 몰라주거나 애써 외면했던 사람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며, 나는 하늘에서 나만의 나침반을 봅니다. 서두르지 않고 바람을 타는 구름처럼, 영겁의 거리를 두고 서로 어우러져 무늬를 만드는 별들처럼,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말을 키우며 걸어갑니다.


당신도 당신의 말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살길, 당신은 차마 알지 못하는 내가 멀리서, 진심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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