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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an 24. 2021

가야 할 이유

<영화> 이유 없이 멈추고 싶어질 땐 반드시 나아갈 이유가 있다. 

내 청춘의 한 대목을 함께했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었던 <전영혁의 음악세계>. 제쓰로 툴(Jethro Tull)의 엘러지(Elegy)가 그 음악방송의 엔딩 비지엠(ending BGM)이었습니다. 


엘러지는 슬픔이나 애도를 표현하는 노래나 시, 곧 비가悲歌나 애가哀歌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그 단어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를 통해 실로 오랜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언어야말로 인간 사유의 확장을 가로막고 한계 짓는 장애물이다', '언어를 극복할 때 인간의 존재성은 시공을 초월할 가능성을 갖는다'와 같은 메모를 에버노트에 끄적거리게 만들었던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철학적 공상과학 영화 <컨택트(Arrival, 2016)>의 히로인 에이미 아담스(Amy Adams)와 <분노의 역류(Backdraft, 1991)>, <파앤드어웨이(Far And Away, 1992)>,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 2005)> 등을 연출한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의 조합에 추억의 단어 엘러지가 어우러졌으니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시놉시스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예일대 법대생이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조우하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는 감동 실화-


불우한 환경이 강제하는 온갖 난관을 극복한 주인공의 휴먼 드라마는 내가 공상과학 영화 다음으로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집 안에 짙게 배어 있던 가난과 술, 그리고 폭력의 냄새를 기억하는 내게 이런 류의 스토리는 어쩐지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어린 영혼 속을 비집고 파고들던 공기의 우울함에 질식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매주 두 편의 영화를 고정적으로 보는 내가 그 중 하나를 반드시 휴먼 드라마로 선택하는 이유는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지 모를 상처 받은 아이의 슬픔을 달래 주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나는 다만 그 시절의 정서를 잊지 않으려 함입니다. 어른이 되면 세상에 건네고 싶었던 말들을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휴먼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나는 그 말들이 살찌는 것을 느낍니다. 그 말들이 담겨 있는 나의 마음이 젖어드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의 화려한 빛에 메마른 당신의 마음도 잠시 촉촉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춘기 시절의 어느 날)


Grandmother: You do that again, I'll leave you there. You're welcome. Now stop stealing things, do your fucking homework and find some decent friends. 

J.D: I don't want new friends.

Grandmother: Then you're not gonna have any. 

J.D: You can't tell me that. You're not my mom. 

Grandmother: I'm all you got.


Grandmother: Now get out before I cancel your birth certifIcate. Get out and get that calculator or don't bother getting back in. You're damn lucky that thing ain't busted. If I weren't crippled, I'd get out of this car, walk around and smack your head and your ass together! 

J.D: Why do you even want me?

Grandmother: Who said I wanted you?

J.D: I really hate you, you know that?

Grandmother: I don't care you hate me, I ain't in it for popularity. You gotta take care of business, go to school, get good grades to even have a chance. 

J.D: Mom was the best in her class. What's the point?

Grandmother: The point is you don't know shit. I'm talking about a chance. You might not make it, but you sure won't if you don't try. 

J.D: Why do you even care what I do?

Grandmother: I ain't gonna live forever. Who's gonna take care of this family when I'm gone?

I thought your mama was gonna be all right. Be happy, do good. But she got tore up around here. She just up and quit. She just stopped trying. I know... I could have done better. But you, you got to decide, you want to be somebody or not? 


할머니: 또 그랬다간 거기에 내버려둘 거다. (계산기가 든 비닐봉지를 J.D에게 건네며) 됐다. 이제 물건 훔치지 말고, x같은 숙제 좀 하고, 괜찮은 친구 좀 사귀어라. 

J.D: 새 친구들 사귀기 싫어요.

할머니: 그럼 말든가.

J.D: 간섭하지 마요. 엄마도 아니면서.

할머니: 너한텐 이 할미 뿐이다. 


(J.D가 계산기가 든 비닐봉지를 길가의 풀밭에 던져 버리자 급히 코너를 돌아 차를 세우며)


할머니: 당장 내려, 인연 끊어 버리기 전에. 내려서 계산기 가져와, 안 그러면 집에 갈 생각도 마라. (J.D가 계산기를 주어 돌아오자) 계산기 박살 안 나서 억세게 운 좋은 줄 알아. 할미가 몸만 성했어도 차에서 내려 니 쪽으로 가서 니 녀석 머리하고 엉덩이를 때려 줬을 거다. 

J.D: 왜 저를 데리고 있으려고 하세요?

할머니: 누가 그러고 싶대? 

J.D: 할머니 정말 싫어요. 아세요?

할머니: 싫어해도 상관없어. 나 좋아하라고 하는 거 아니다. 정신 차려서 학교 다니고 성적 잘 받아야 기회라도 얻을 거다.

J.D: 엄마도 반에서 젤 잘했다죠. 요점이 뭐예요? 

할머니: 요점은 니가 x도 모른다는 거지. 난 기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성공하지 못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성공 못할 거다.

J.D: 제가 뭘 하든 할머니가 뭔 상관이에요?

할머니: 난 영원히 살지 않아. 할미가 죽으면 누가 이 가족을 돌보겠니? 할미는 니 엄마가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치이더니 그냥 포기하고 그만두더라. 노력을 멈췄지. 할미도 안다... 할미가 더 잘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너, 넌 결정해야 해. 훌륭한 사람이 될 건지 말 건지.    




(치료 시설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갈 곳 없는 엄마를 모텔에 모시고 와서)


Mom: Stay with me.

J.D: I love you, mom. I want you to get better. 

Mom: I know.

J.D: For you to be happy. And I'll help you. I'll do everything I can. But I can't stay. I'm not saving anyone here. Linsay's on her way. I really hope you'll wait for her. But I have to go. 


엄마: 엄마 옆에 있어주렴.

J.D: 사랑해, 엄마. 엄마가 나아지기를 바라.

엄마: 그래.

J.D: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해. 그리고 내가 도울 거야. 할 수 있는 것을 다할게. 하지만 여기 있을 순 없어. 여기서는 아무도 구할 수 없거든. 린지(누나)가 오는 중이야. 누나가 올 때까지 기다려줘. 난 가야 해.





Elegy by Jethro Tull


https://youtu.be/bSZbyAEJI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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