彖曰 頤貞吉 養正則吉也 觀頤 觀其所養也 自求口實 觀其自養也 天地養萬物 聖人養賢 以及萬民 頤之時 大矣哉
상왈 이정길 양정즉길야 관이 관기소양야 자구구실 관기자양야 천지양만물 성인양현 이급만민 이지시 대의재
-<단전>에 말했다. '이정길'은 바름을 기르면 길하다는 것이다. '관이'는 길러지는 바를 보는 것이요, '자구구실'은 스스로 기름을 보는 것이다. 천지가 만물을 기르듯이 성인은 인재들을 길러 만백성에 이르니 이의 때가 크도다!
'양정'은 4괘 산수몽괘의 <단전> 끝부분에도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蒙以養正 聖功也 몽이양정 성공야 / 바름을 기르는 몽이야말로 성인을 만드는 공이다'라는 대목입니다.
관觀을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 산뢰이괘가 리괘(☲)에서 눈동자를 크게 뜬 대리大離의 상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는 것(대관大觀)이며 전체를 꿰뚫어 보는 것(통관通觀)입니다.
공자는 이頤를 양養의 개념으로 명확히 했습니다. 길러지는 바를 보는 것이라고 하여 '관이'를 윗사람(상구)의 도道로 보고 있고, 스스로 기름을 보는 것이라고 하여 '자구구실'을 아랫사람(백성, 초구)의 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윗사람은 자신이 양육하고 교육하는 대상을 잘 살펴야 하는 존재이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먹을 것과 배울 것을 구하면서 자기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천지가 만물을 기르듯이 성인이 인재들을 기름으로써 다시 인재들을 통해 백성들이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현'은 바로 이전 괘인 26괘 산천대축괘의 <단전>에 등장했던 표현입니다. '不家食吉 養賢也 利涉大川 應乎天也 불가식길 양현야 이섭대천 응호천야 /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한 것은 인재들을 기르기 때문이요, 큰 내를 건너면 이로운 것은 하늘에 응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입니다.
공자의 이런 인식은 현대사회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괘사에서 설명했듯이 관이와 자구구실의 주체를 각 개인으로 상정하고 식食과 언言의 실實을 허虛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주역의 뜻에 더 가깝다고 판단합니다.
앞서 16괘 뇌지예괘의 <단전>을 설명하면서 공자가 <단전>에서 시의時義, 시용時用, 시時에 대해 언급한 괘들에 대해 차후에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의時義는 '때에 순응함'을 말하는 것으로 16괘 뇌지예괘, 17괘 택뢰수괘, 33괘 천산둔괘, 44괘 천풍구괘, 56괘 화산려괘의 <단전>에 나옵니다.
시용時用은 '때의 활용'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29괘 중수감괘, 38괘 화택규괘, 39괘 수산건괘의 <단전>에 들어 있습니다.
시時는 '때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27괘 산뢰이괘, 28괘 택풍대과괘, 40괘 뇌수해괘, 49괘 택화혁괘의 <단전>에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열두 괘를 공부할 때는 때(時)를 키워드의 하나로 삼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象曰 山下有雷 頤 君子以 愼言語 節飮食
상왈 산하유뢰 이 군자이 신언어 절음식
-<대상전>에 말했다.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頤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한다.
앞의 괘사편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충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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