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28.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괘사

전환의 시기다. 전반기가 불행했다면 당신의 후반기는 행복할 것이다.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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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인생이나 사회, 국가의 역사, 그리고 시대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전환은 두 개의 패러다임이 섞이며 바뀌는 과도기를 거치게 되지요. 과도기를 대하는 자세는 낙천적이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불안정성 속에서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것이 정신의 성숙이요 역사의 진보라면, 변화를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그것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혼란, 불안의 감정에 사로잡히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될 확률도 증가합니다. 익숙한 것으로의 후퇴를 안정이라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과도기를 통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용기와 긍정입니다.



大過 棟橈 利有攸往 亨

대과 동요 이유유왕 형


-기둥이 휘어지지만 나아가면 이롭고 형통할 것이다.



<서괘전>에 '頤者養也 不養則不可動 故受之以大過 이자양야 불양즉불가동 고수지이대과'라고 했습니다. '이(산뢰이)는 기르는 것인데 기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기에 대과(택풍대과)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기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곧 기르니 움직인다는 뜻으로, 대과괘에는 지나친 움직임 곧 물질문명의 과도한 발달로 인해 정신문명이 폐해를 입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잡괘전>에서는 '대과전야大過顚也'라고 하여 택풍대과괘에 전도顚倒와 전복顚覆의 뜻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택풍대과괘는 전체가 몸통 양이 많은 대감大坎의 상입니다. <설괘전> 11장에 '감기어목야위견다심坎其於木也爲堅多心'이라고 하여 '감괘는 나무에 있어서는 단단하고 심이 많은 것'이 되어 '동棟'의 상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둥의 위아래가 유약하여 가운데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휘어지는 것이지요. '요棟'의 상황입니다. 외괘는 태괘로 금金이요 내괘는 손괘로 목木이니 나무가 잘려 상하는 것이요, 태괘 연못 아래에 뿌리가 잠겨 있으니 역시 나무가 썩어 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나아가면 이롭고 형통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호괘가 1괘 중천건괘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본말本末(초육과 상육)이 희미해진 상황에서도 구이부터 구오까지의 군자들이 원형이정의 이치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에서 택풍대과괘는 상경을 마무리짓는 시점에 이른 괘의 위상을 갖습니다. 상경은 1괘 중천건괘와 2괘 중지곤괘로 시작하여 29괘 중수감괘와 30괘 중화리괘로 마무리됩니다. 천지는 수화水火의 기운으로 운행된다는 의미입니다. 목금木金이라는 만물은 수화가 작동시키는 세상의 운행 법칙에 의해 지배될 뿐이지요. 새싹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로 익었다가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듯이 세상 만물도 삶과 죽음의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의 밑거름이 됩니다. 인간은 이 경이로운 프로세스의 일원일 뿐이지요.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로는 천지의 뜻에 부합하는 조화와 균형의 원리를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상경의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3괘 수뢰둔괘부터 28괘 택풍대과괘까지를 선천先天 시대라고 부릅니다. 선천과 후천後天의 개념은 공자가 쓴 <문언전>의 1괘 중천건괘 편 6절의 대인大人에 대한 설명 중에 들어 있는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선천이천불위 후천이봉천시'에서 유래하고, 북송 시대의 소강절 선생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문장의 주어는 대인大人이기 때문에 '대인은 하늘에 앞서도 하늘을 어기지 않고, 하늘을 뒤따라도 하늘의 때를 받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인이 하는 일은 늘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기 때문에 대인이 언제 무슨 일을 하든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뜻이지요.


선천은 하늘이 열리기 이전, 후천은 하늘이 열린 이후의 시대이니 선천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후천은 현실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이런 설명 조차 매우 모호하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 불가능한 것은 없지요. 우리의 삶에 시기마다 중요한 이슈가 있어 마디를 형성하듯이 하늘도 하나의 큰 마디를 이루어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된다고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주역 공부가 진전될수록 선후천의 상징성이 점점 실체화되어 갈 것이니까요.


더 감각적인 이해를 위해 덧붙이자면, 선천은 플라톤적 하늘이요, 후천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하늘입니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28괘 택풍대과괘, 29괘 중수감괘, 30괘 중화리괘를 거쳐 후천의 시작인 31괘 택산함괘를 공부하는 동안 이 비유가 피부에 보다 가까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과도기는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세상은 단기간에 감당하기 버거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의 이전은 자연스러웠으나 근대에서 현대로의 진전은 너무도 혁명적이어서 인간이 시대에 적응하는 속도를 시대가 인간을 강제로 끌고 가는 속도가 압도했습니다. 그런 광포한 패러다임의 변혁은 반드시 수많은 시대 부적응자를 낳기 마련이지요. 하늘은 급할 것이 없는데 하늘 아래 땅에 붙박인 인간은 뭐가 그리 급한지 뒤쳐진 동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질주하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 속도전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구한말의 우리 위정자들은 나라를 지구 상의 부적응 국가로 전락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잡아먹힌 나라에서 노예의 삶처럼 비극적인 인생을 감내하게 만든 것입니다. 크게 보면 동양 전체가 서양의 총칼에 점령되어 신음한 암흑의 시기였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흉포한 서양의 무력을 뒷받침한 정신과 사상의 토대는 너무도 허술하여 결국 그 시절의 과도기를 거친 오늘날, 서양은 동양의 깊은 사상과 문화에 잠식되고 있습니다. 주역 공부를 통해서 인류 역사, 동서양의 차이와 동양의 우월성,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읽는 눈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동요棟橈'라는 단어에는 각각 나무 목木이 들어 있는데 이는 동방을 뜻합니다. 동東은 글자 그대로 동쪽이요, 요堯는 요임금을 의미하지요. 요임금은 동이족입니다. 한족이 아니지요. 결국 동요라는 표현에는 서구의 동방 침탈이라는 과도기, 서구 자본주의의 동양 정벌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동방이 중심된 새로운 시대, 곧 후천 시대가 개막될 것이라는 예언이 암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요임금처럼 위대한 리더가 후천 시대에 다시 동방에 등장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언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동방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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