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30.중화리괘重火離卦>-단전과 대상전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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彖曰 離麗也 日月麗乎天 百穀草木 麗乎土 重明 以麗乎正 乃化成天下 柔麗乎中正 故亨 是以畜牝牛吉也

단왈 리려야 일월려호천 백곡초목 여호토 중명 이려호정 내화성천하 유려호중정 고형 시이축빈우길야


-<단전>에 말했다. 리는 걸리는 것이다. 해와 달이 하늘에 걸리고 백곡과 초목이 땅에 걸리듯 두 개의 밝음이 바른 데 걸려 천하를 변화시켜 이룬다. 유가 중정에 걸려 형통하니 이와 같이 암소를 기르면 길한 것이다.



'고울 려(麗)'는 사슴(鹿) 두 마리가 나란히(丽) 붙어 걸어가는 형상으로, 그래서 '붙다, 걸리다, 곱다, 아름답다'는 뜻이 나옵니다.


'유柔'는 육이와 육오를 의미합니다. 각각 내괘와 외괘에서 득중했지요. 육오는 실위했지만 득중하였기에 자연스럽게 바르게 된다고 보아 공자가 육이와 육오 모두 중정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리괘(☲)는 가운데는 비어 둔 채 밖으로 양기를 발산하는 불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중앙의 허虛가 없으면 외부로의 확장도 없는 것이지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꽉 차 있는 것입니다. 눈동자의 형상이기도 하지요. 인간의 눈이 상징하는 시각은 오감 중 가장 취약합니다. 빛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달리 말하면 빛이 있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 감춰져 있는 진리를 보기 위해서는 심안心眼의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가득 차 있는 진리의 정수,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진리의 조명을 볼 수 있는 눈을 우리는 길러야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빈우牝牛에서 암소를 닮은 순한 여성성, 묵묵히 일하는 암소의 과묵함, 새끼들을 기르는 암소의 모정이 상징하는 돈후함만을 읽으면 부족한 것입니다. 궁극의 음적 성질을 띠는 진리의 고갱이 곧 한없는 추구 끝에서 만나게 되는 진리의 단순함과 동시에 미시 세계로의 영원한 양자역학적 수렴처럼 알겠다 싶으면 금새 새로운 무지의 장을 눈앞에 펼치는 진리의 불확실성과 비고정성을 느껴야 합니다. 마치 이중슬릿 실험처럼 인간도 진리도 입자이자 동시에 파동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포함한 타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완전무결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노자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선언하며 <<도덕경>>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인간에게는 관찰하는 순간 실체를 바꾸는 유동적 진리의 탐구 과정만이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땅의 진리, 땅의 도리를 기르고 가꾸고 키워 가는 것이 '축빈우'입니다. 1괘 중천건괘와 2괘 중지곤괘 곧 하늘과 땅의 이치로 시작했던 주역 상경과 달리 하경이 음양의 감응, 인간으로서는 남녀의 교감을 얘기하는 31괘 택산함괘로 출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象曰 明兩作離 大人以 繼明 照于四方

상왈 명량작리 대인이 계명 조우사방


-<상전>에 말했다. 밝음 두 개로 리괘를 지었으니 대인은 이를 본받아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



'명明'은 해(日)와 달(月)의 합자입니다. 해는 낮을, 달은 밤을 관장하지요. 그렇지만 달은 햇빛을 받아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니 달은 해의 대행자입니다. 두 개의 태양이 걸려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공을 달리 맡고 있을 뿐입니다.


대인이 할 일은 만물에 차별 없이 빛을 내려 주어 기르는 이 두 개의 밝음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육이와 육오 효사에서 <대상전>의 대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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