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36.지화명이괘地火明夷卦>-괘사

불운의 시기다. 무모하게 맞서지 말고 지혜롭게 물러나 인내하라.

by 오종호


36.png

탁월한 경륜과 지식, 능력이 있어도 전혀 인정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날개 꺾인 새처럼 매사 어려움을 겪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여건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시기이지요. 이럴 때는 마음을 다스려 무모한 시도를 자제하고 차분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는 사람은 위기 앞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최후의 일전을 치르듯 거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적을 향해 고난의 시기를 유연하게 넘을 뿐입니다.



明夷 利艱貞

명이 이간정


-어려울수록 바르게 해야 이로울 것이다.



<서괘전>에 '晉者進也 進必有所傷 故受之以明夷 진자진야 진필유소상 고수지이명이'라고 했습니다. '진(화지진)은 나아가는 것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상하게 되기에 명이(지화명이)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외괘는 곤괘 내괘는 리괘로 밝음이 땅 속에 들어가 빛을 잃은 형국입니다. 오랑캐 이(夷)는 <서괘전>의 상傷의 의미입니다. 곧 빛이 땅 속에 갇혀 상한 것이지요.


지화명이괘는 35괘 화지진괘와 도전괘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햇빛이 대지를 환하게 비추던 낮이 끝나고 밤의 어둠이 내렸습니다. 찬란한 문명사회가 저물고 악이 지배하는 암흑시대가 열린 것과 같습니다.


이런 때를 살아가는 군자는 고초를 겪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드러낼수록 악인들의 탄압이 거세지지요. 태양이 제아무리 밝아도 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감추며 전복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기계발서들은 지치지 않는 열정, 끊임없는 도전, 고민보다 행동 등을 얘기하지만 길운과 흉운을 구분하지 못하면 용전분투가 오히려 독의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운을 읽어 때를 아는 지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발휘하는 저돌성은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오만과 만용일 뿐만 아니라, 세상 일이 의지와 노력 만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지화명이괘를 통해 우리는 불운의 시간을 견디는 마음가짐과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암울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냉철하게 판단하여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행위만을 해야 합니다. 바르게 한다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지혜 차원의 개념입니다.


각 효사를 구성한 역사적 모티프를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493371365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