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달리기 시작한 작은 말V

by 오종호

주요한 기능 두 가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과거의 전설이자 현재의 내시인 트라이엄프와 아마도 다음 후손은 지그재그의 가계구조상 자기보다는 자기 아버지를 닮은 종마를 낳게 될 가능성이 생물학과 유전학, 동물학, 그리고 심지어는 뇌과학, 심리학, 경제학을 융합해보았을 때 대단히 높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들 숏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초원의 풍경과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사진들과 어우러져 절묘하게 편집된 기사로 경마 전용 잡지와 야한 속옷광고가 가장 많이 실리는 여성잡지에 게재되자 하루 만에 수많은 독자들이 문의전화를 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화문의가 반갑기만 했던 목장 주인은 문의자의 대부분이 여성지를 읽고 전화한 것임을 알게 된 후 얼굴도 모르는, 변태의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을 수도 있는 남자들과 통화한다는 것이 시간낭비임을 깨닫게 되어 더 이상은 전화로 대화할 용의가 없음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에게만 팔겠다는 내용으로 친히 녹음하여 전화 연결음을 대신하여 친절하게 남겨 두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우아한 비행을 선보이며 트라이엄프 대신 결승점을 통과하여 주목을 받았던, 한때는 트라이엄프라고 불렸다가 지금은 마내관으로 불리는 말의 기수가 자기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트럭을 끌고 나타났다.


“트라이엄프를 아무한테나 팔 수는 없습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누구한테 팔든 그건 내 맘이오.”


“어차피 필요한 것은 돈 아닙니까?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가격을 말씀해주십시오.”


기수의 선한 눈은 잠시 목장 주인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정확히 1.7초후 그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목표를 향해 날아본 적이 있는 사람의 눈빛 따위에 흔들려서는 어찌 돈을 벌겠는가.


“5천만원! 트라이엄프에 숏, 원 플러스 원!”


목장주 인은 그 이하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미간에 세로 주름 두 개를 깊이 세우고 단호한 표정으로 기수의 눈을 노려보았다.


“받고 4천 더! 트라이엄프와 숏, 그리고 숏의 어미 포함!”


“콜!”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을 뱉어버린 목장 주인은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뇌의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미친 놈한테는 빨리 돈을 받아내는 게 상책인 셈이었다.


“완불하면 바로 내어 주겠소.”


“자, 여기 제 서명이 들어간 9천만원짜리 수표 받으시지요. 여기 계약서도.”


그 동안 운 좋게 트라이엄프의 기수 노릇하면서 챙길 만큼은 챙긴 모양이었다. 괜히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참으며 목장 주인은 서둘러 말 상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말을 비싸게 되사고 싶다는 말을 간곡하게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들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표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압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백 더 얹어서 천오백 만원. 단, 지금 당장 데려오는 조건으로! 더는 마음 아픈 꼴을 못 보겠단 말이야!”


안 그래도 통 먹이도 안 먹고 운동도 안하고 새로운 남자친구 사귈 생각은 더더욱 없는 탓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말 상인도 갑자기 천 만원을 벌게 된 터라 경마대회 결승전 때의 기수의 비행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당장 출발!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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