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37.풍화가인괘風火家人卦>-구오

너그럽게 리드하라. 참 조력자와 함께하라.

by 오종호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象曰 王假有家 交相愛也

구오 왕가유가 물휼 길

상왈 왕가유가 교상애야


-왕의 너그러움이 집에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 길할 것이다.

-왕의 너그러움이 집에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구오는 외괘 손괘에서 중정함을 얻었고, 구이와 정응하고 있습니다. 집안의 리더이니 후덕한 가장이요, 부인의 내조를 잘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오가 동하면 외괘가 간괘가 되니 여기에서 두터운 덕의 상이 나오지요. 산의 형상에서 두터움(厚)과 도타움(敦)의 성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가假'는 '너그럽다'는 의미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부인의 내조를 잘 받는 까닭은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겠지요. 집에서 너그럽게 하는데 가족 구성원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의 너그러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 공자의 진단입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교상애'의 교交를 특별히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交는 사귀는 것이고 교류, 교제하는 것이니 식구들끼리 한 공간에서 함께하는 상황이라는 뉘앙스만 느끼면 충분하지요. 교交 역시 부사로 보아 '서로'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보다 교상애에서 묵자를 잠시 떠올려 보는 편이 우리에게 더 유익할 듯합니다.


묵자의 출생은 대체로 공자 사후로 봅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묵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확률보다는 그 반대 경우의 확률이 높은 것이지요. 유가와 묵가가 대립적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다름 아닌 공자나 묵자 같은 대학자들이 서로의 이론과 주장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상식적입니다. 철저한 비판과 공격을 위한 연구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반드시 만나기 마련이니까요.


묵자의 겸애사상은 '겸상애 교상리 兼相愛 交相利'라는 표현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두루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묵자에 따르면 상애相愛의 반대는 불상애(不相愛, 서로 사랑하지 않음)이고 이는 별애(別愛, 차별적 사랑)로 인해 초래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상애는 두루 아울러 사랑하는 것(겸애兼愛)으로 확장되지요. '순천지의자 겸야 반천지의자 별야 順天之意者 兼也 反天之意者 別也'라고 하여 묵자는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을 겸애, 하늘의 뜻에 반하는 것을 별애로 분명히 하였습니다.


겸애는 자기를 배제한 이타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철저히 자기를 위한 일이 된다고 보았습니다(위피유위기야爲彼猶爲己也, 상대를 위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가정 안으로 한정하면, 가장이 식구들에게 너그럽게 하는 것은 식구들의 자연스러운 인정과 존경으로 이어지니 결국 가장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구오가 동하면 지괘는 22괘 산화비괘가 됩니다. 산화비괘 괘사는 '賁 亨 小利有攸往 비 형 소리유유왕'입니다. '형통하다. 나아가면 작은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산화비괘 육오 효사는 '六五 賁于丘園 束帛戔戔 吝 終吉 육오 비우구원 속백잔잔 인 종길'입니다. '언덕 위의 정원에서 꾸밀 때는 비단 묶음이 작으면 인색하나 결국 길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풍화가인괘 구오와 연결하여 읽으면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어질고 현명한 아내처럼 진정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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