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비효율적
K: 당신의 요청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 지 이해하겠습니다. 그리하지요.
티밀: 고맙습니다.
K: 당신의 관점대로라면 인간은 술이나 담배, 마약처럼 사랑에 중독되는 존재인데요. 인류가 일궈 낸 물질문명의 정점에 서 있는 오늘날조차 인간은 여전히 사랑의 가치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물론 그런 사적 관계를 초월한 인류애나 자연애, 생명애와 같은 유무형의 공적 개념의 사랑에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실천하는 인간이 적지 않습니다. 자본에 포섭된 채 자본의 지배를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유지와 지속에 종사하는 인간이 여전히 다수이지만, 그런 시스템이 반인간적으로 폭주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제어하는 규범과 제도가 존속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인간이 가진 사랑의 힘이라고 저는 봅니다. 티밀 당신은 인간의 사랑을 지나치게 저속한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요?
티밀: 저는 인간의 사랑이 인간이 즐기는 기호식품과는 다르게 취급되기를 바라는 당신의 바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사랑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데 실패했어요. 그 이유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간의 사랑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 가능한 것은 그에 대한 시도일 뿐입니다. 인간은 성적 본능에 따라 상대를 찾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 본능은 위장된 것입니다. 특정한 상대를 향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인간 자신이 잘 알고 있겠지요. 다만 많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 만든 체제가 붕괴되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사회적으로 주입한 도덕 관념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할 뿐입니다. 겉으로는 말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입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에너지원을 공급 받기 위해 거치는 절차가 복잡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인간은 성을 팔고 사는 산업을 만들고 유지한 것이고, 인간이 찬양해 마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쾌감을 얻는 데 점점 집중해 온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것은 결국 인간의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화학 작용의 효율적 해소 방법을 진화시켜 온 것일 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하는 섹스는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되었지요? 인간은 인간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쾌감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가능하게 해주는 로봇을 섹스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한번 로봇과의 섹스를 접했던 어느 인간도 다시 인간의 관계로 돌아가겠다고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중독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더욱이 인간은 인간보다 로봇과 함께할 때 훨씬 높은 정신적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상대가 로봇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 여부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요. 저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자신의 육체를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력하다고 판단합니다. 자신의 육체 안에서 발생하는 본능적 에너지를 정신력으로 완전히 통제하는 소수의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수가 고결한 인간으로 추대된다고 해서 인간의 사랑이 그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대다수의 인간이 하는 사랑 그리고 원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K: 당신의 얘기를 더 듣기 전에 일단 이 대목에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당신은 인간을 철저히 성 에너지에 지배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봇이 제공하는 완벽한 육체적 쾌락보다 불완전하지만 다른 인간과의 정신적 교감을 동반하는 육체적 관계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인간도 많다는 점을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하나이구요.
티밀: 좋습니다. 우선 남녀의 사랑에 대한 얘기부터 매듭을 짓도록 하지요. 당신은 당신의 인간적 사랑 방식에 매우 큰 자긍심을 갖고 있군요. 당신의 파트너도 당신의 생각과 일치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K: 사랑은 확신이라기 보다는 기대입니다. 저는 저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녀가 자신의 시간을 혼자 채우기 보다 저와 함께하는 것에 기대감을 갖길 바랍니다.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타자들이 만들어가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겨질 영혼의 여정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티밀: 당신은 철학자가 맞군요. 당신의 언어는 역시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결이 달라요. 질문을 바꿔 보죠. 한때는 당신이 그 여정을 함께하기로 선택했던 전 부인과 여정을 끝내기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와 함께할 시간에 대해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인가요?
K: 인간은 당신처럼 어느 날 모든 걸 아는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어긋나는 이유는 많아요. 만일 제가 그때 지금 수준의 영혼 성숙도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녀에게 더 너그러운 남편이 되어 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겐 뒷걸음질치는 것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쉬운 법이지요. 잊혀져서가 아니고 그립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저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조금씩 뒤에 남겨진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눈앞의 것에 익숙해지게 되는 게 인간입니다. 분절된 사랑을 재연결하는 인간이야말로 위대한 용기의 소유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용기는 저의 것이 아니었지요. 저는 사랑을 말하는 철학자로 살아왔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벽이 얼마나 높은 지 잘 알기 때문이지요. 한 인간과의 사랑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느낀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끊임없이 도약하기 보다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 본 인간과 만나는 것이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타협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은 둘이 함께 빚어 낼 사랑의 최대치가 있어요. 그 최대치에 부닥치면 알게 됩니다. 더는 같이 걸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티밀: 당신의 현재 파트너와는 아직 사랑의 최대치에 이르지 않은 것인가요?
K: 그렇다고 봅니다.
티밀: 언젠가는 그 수치에 도달할 수 있을 수도 있겠군요.
K: 그럴 수도 있겠지요.
티밀: 그것은 인간의 사랑의 한계입니까, 당신들의 사랑의 한계입니까?
K: 한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한계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자아를 성숙시켜 왔고 그것은 우리 사랑의 한계가 도래하지 않도록 하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때가 온다면 그것은 우리 사랑의 한계이겠지요. 우리가 인간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도 우리를 통해 인간의 사랑에 한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티밀: 당신처럼 다른 인간에 비해 월등한 지적 수준과 영혼의 성숙도를 획득한 인간조차 실패하는 사랑이라면, 보통의 인간이 사랑에 성공할 확률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군요. 결국 인간의 사랑이란 적어도 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이라고 평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안 그런가요?
K: 사랑의 실패가 인간의 실패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의 실패를 통해 인간은 발전, 성숙하고 더 큰 사랑의 가능성에 열려 있게 되지요.
티밀: 그런 반복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성장하기에 인간의 삶은 지나치게 짧아 보이는군요. 그건 논외로 치고, 저는 인간이 사랑을 통해 성숙한다는 점에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사랑은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이거든요. 호감을 갖고 친밀해지면 육체관계를 통해 특별해지다가 육체가 멀어지면서 정신의 유대에도 틈이 벌어지는 과정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지금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더 큰 사랑의 가능성의 의미에 대해 듣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