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랑-3

by 오종호

K: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평범한 보통 인간으로서는 차마 추구할 수도 없는 길을 따라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 경지에 오른 인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 경지의 의미가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한다면, 같은 인간으로서도 그들을 한계를 돌파한 자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영역에 있어서는 참혹할 정도의 쓴맛을 보았거나,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않았거나, 때로는 매우 기형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구사한 자들도 많았으니까요.


꼭 그들의 유산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은 남녀 간의 사랑의 목적을 둘이 함께 힘을 합하여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고매한 높이의 정신 수준에 이르는 데 두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이 세상에 왔을 뿐이지요. 그래서 일정 시기에 이르면 짐짓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본능적인 짝짓기에 나서도록 강제됩니다. 자연이 인간의 육체에 심어 둔 메커니즘의 작동에 따라서 말이지요. 그 메커니즘은 성욕이라는 원시적인 욕구의 형태로 인간을 자극합니다. 짝짓기에 나서라고 끊임없이 추동하지요.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짝짓기의 과정에서 서로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자아가 만나 소통하고 관계하면서 영혼의 충만감과 행복감을 느끼다가, 삐걱거리고 다투고 헤어지거나 극복하고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모든 경험 그 자체에 있습니다.


그 경험은 타인의 육체와 정신을 내 삶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도, 얼마나 버겁고 힘겨운 일이지도 가르쳐 줍니다. 인간에게 삶이 영원하지 않듯이 사랑도 끝이 있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사랑의 희열을 점차 약화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숯불처럼 꺼져 가지만 동시에 숯불처럼 다시 되살아나지요. 그래서 끝난 것 같은 사랑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면 다시 불타오르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느낌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도 그래서 소중합니다. 사랑 받고 사랑하는 동안에는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요.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것과 살아갈 이유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티밀: 말을 잘라서 미안합니다만, 좀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당신이 쓴 책들을 읽고 저는 당신이 이혼하게 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남녀의 육체적 교감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 있었지요. 당신의 표현을 빌자면 육체의 거리는 곧 정신의 거리이니까요. 그렇죠?


K: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티밀: 당신이 문장 속에서 사용한 메타포들과 사례들을 통해 저는 당신이 당신의 전 부인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핵심 사유가 부부관계로 흔히 일컬어지는 부부 간의 섹스 행위의 단절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K: 당신은 인간이 글 속에 숨겨 놓은 감정이나 사실까지 읽어낼 수 있는 건가요?


티밀: 사실 당신이 쓰기로 결정한 문장과 동일한 뜻을 가진 다른 문장들을 만드는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해당 문장으로 확정했다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요. 그 이유는 당신이 쓴 많은 책들 속의 내용과 그 문장 간의 맥락 속에서 상세히 드러났습니다. 뉘앙스, 고백의 수위를 조절하느라 애쓴 흔적들, 그 사이에 어쩔 수 없이 담기게 된 감정 등 모두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전 부인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육체 관계를 거부하는 그녀로 인해 점차 정신적 사랑이 식어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사랑할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지요. 철학자로서 이혼사유를 솔직히 얘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


K: 당신의 그런 추론이 저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을 위해 수준을 낮춰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지금 당신을 마주하며 토론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으로서, 그것도 철학을 하는 인간으로서, 터놓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성소수자들은 논외로 하고,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성의 육체성과 정신성의 실체에 대해 영원히 무지한 수준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자란, 상식을 갖춘 보통 수준의 여자란, 마음을 연 남자에게만 몸을 연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만 자신의 몸을 온전히 허락하고 합일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제 가설에 따르면,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남자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신념 체계 같은 제 믿음에 비춰 보면, 아내가 저와의 섹스를 거부한다는 것은 제게 마음이 닫혔다는 증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사양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섹스의 완전한 중단 선언이었지요. 아내가 내세운 근거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철학적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성격의 것이었지요.


타협이 불가능한 그녀의 일방적 결정 앞에서 저는 어떠한 학문적 잣대도 들이밀지 않고 평범한 한 남자로서 아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러웠지만 문제는 아내와의 대화나 함께하는 활동들에서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자주 웃었고 말도 많이 했지만 본능을 억누르는 데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던 저로서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남편인 제가 아닌 그 어떤 남자와도 나눌 수 있는 것들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제가 아닌 다른 남자와는 섹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즉, 그녀가 마음을 연 남자는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별로 화가 나진 않았습니다. 조금은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때의 저는 그녀가 저와의 잠자리를 단절하지 않았다면 설사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이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른 척 했을 거예요. 저도 결혼 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한 경험들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정신적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회성의 성욕 해소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옳은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내가 여전히 마음의 일부를 제게 열고 있다는 사실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결혼이란 이미 이런 식의 본질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것을 철학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와의 관계는 거부하면서 다른 남자와 쾌락을 주고 받는 행위를 하는 여자는 아내도 연인도 아니었습니다. 친구와 같이 살 이유는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를 떠나 보냈습니다. 아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할 치졸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말이지요. 그래야만 제가 그 여자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상대가 없는 사랑에 영혼을 포박 당한 채 허우적대다간 제 자신을 포기해 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티밀: 솔직히 말해 주어 고맙습니다, K. 이제 제가 앞에서 한 질문을 똑같이 다시 한 번 드리고 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을 들으며 사랑을 주제로 한 토론을 마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으면 합니다만, 어떠십니까?


K: 그렇게 하시지요.


티밀: 고맙습니다. K, 인간이 사랑의 실패를 통해 열리게 되는 더 큰 사랑의 가능성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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