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상인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전화통화가 끝난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이 놈의 잡상인이 그새 마음이 바뀌어 돈을 더 달라고 하려는 것인가? 달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백만 원만 더 얹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은 목장 주인에게 말 상인은 약 1킬로미터, 좀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내비게이션 상 수치로는 982미터를 남겨두고 트럭의 뒷바퀴가 진흙탕에 빠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아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견인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약속시간에 한참 늦게 나타나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하여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백만 원 더 얹어 줄 테니까 당장 그 말 내려서 직접 타고 와! 그 똥차는 전화해서 끌고 오라고 하고!”
전화 한 통화로 백만 원을 더 챙기게 된 말 상인은 도로 옆 널찍한 공터에 트럭을 안전하게 대어 놓고는 트라이엄프의 아내이자 숏의 어미를 조심스럽게 내리게 한 후 안장을 얹어 올라탔다. 비록 말이 그다지 좋아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여하튼 982미터를 걸어가려면 돈을 챙길 시간은 그만큼 늦어질 것이었다.
기수의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고 9천만원짜리 수표를 챙긴 목장 주인은 기회를 놓칠세라 기수의 손을 잡아 끌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목장 안에서 트라이엄프와 숏이 다른 말들에 둘러싸인 채 평화로운 얼굴로 노닐고 있는 모습에 목장 주인은 이 꼬라지 보는 것도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기수에게 연신 사랑하는 말들과 헤어지게 되어 아쉽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때 목장 저편 끝 작은 고개 위로 트라이엄프의 아내이자 숏의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목장주인과 기수의 눈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숏과 숏의 엄마의 눈도 위성측정거리로 정확히 375.73757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치기에 이르렀다.
먼저 반응한 것은 숏의 엄마로 고삐를 느슨하게 잡고 있던 말 상인의 의지는 아랑곳없이 질주를 시작하였는데 역시 말 상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 5미터를 날아가 길 옆 진흙탕에 처박히고 말았다. 기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나아갈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다시 말해 역주행으로 우아한 비행을 선보였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숏이 난생처음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속도는 전성기 트라이엄프의 두세 배를 능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눈부신 질주였다.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입은 가로로 찢어졌고 또 한 사람의 입은 세로로 찢어졌는데 그거야 사람마다의 개성의 차이라고 해도 후자는 턱 관절이 빠지는 바람에 방금 전 끝낸 계약서상의 금액에 몇 배를 더 얹어줄 테니 계약을 무효화하자는 말 대신 결국 턱을 죽 늘어뜨린 채 손짓 발짓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기수는 수화나 족화를 배운 적은 전무했던 관계로 둘 사이의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어미 곁으로 달려간 숏은 어미와 함께 어울려 신나게 춤을 추다가 둘을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트라이엄프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목장의 모든 말들이 앞발을 들고 ‘히히힝’ 소리를 내며 축하해주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