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시간

by 오종호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 김훈



햇빛이 좋아 점심을 먹고 해안선을 따라 잠시 걸었다. 부장 몇이 따르고자 했으나 손을 들어 막았다. 그들도 좀 쉬어야 했다. 양지 바른 곳마다 병사들이 오침을 즐기고 있었다. 땅에 등을 대고 누운 병사들의 얼굴마다 해진 투구가 얹혀 있었다. 배불리 먹여 줄 수 없는 나는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그들의 얼굴에 허옇게 올라온 각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렸다. 꿈속에서 그것은 자주 파도처럼 밀려와 내 몸 위로 떨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신음을 토하며 깨어나곤 했다. 각질은 병사들의 고단함처럼 나의 몸을 짓눌렀다.


김노인이 노구를 이끌고 배를 띄우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먹일 물고기를 잡아 보겠노라 말하며 누런 이를 활짝 드러내 순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도 허옇게 눈은 내려 있었다. 피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던 물고기들이 방향을 바꾼 해류를 따라 떠난 뒤로 김노인은 물고기를 쉬이 낚지 못했고, 그는 그것을 늘 죄스러워했다. 나는 내려앉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으로 나의 미안함을 전했다. 나를 만났기에 김노인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먼 바다로 길을 잡을 터였다. 먼 바다에서 그의 낡은 어선은 그의 늙은 몸을 지켜 주지 못할 것이었다. 경계 중인 병사를 불러 그의 배 뒤로 호위선을 붙이게 했다. 오늘만은 그의 배 한가득 실한 물고기들이 가득 채워 주길 나는 바랐다. 그저 덜도 더도 말고 그의 배에 실린 햇볕 만큼만 풍성하길 나는 바랐다.


바다 너머에서 적은 다시 군세를 키우고 있었다. 단기간에 실권을 장악한 유노 소쿠요루는 간악한 자였다. 배신을 밥 먹듯 일삼으며 권력의 중심부로 빠르게 다가선 후 자신의 주군 등에 칼을 꽂은 뒤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의 유능함은 간사함을 우직함으로 포장하는데 있었다. 비명횡사한 그의 주군처럼 나의 조정도 그의 무식을 무능으로 자주 착각했다. 그는 무식했지만 무능한 자는 아니었다. 그는 무식한만큼 잔인한 자였다.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이들을 그는 잔인하게 도륙했다. 그는 사람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수집했고 그것을 무기로 불의하고 부정한 자들을 자신의 방패로 삼았다. 유노 소쿠요루의 살기가 바람을 타고 바다를 넘어오고 있었다.


적이 심어 놓은 간자들은 조정의 안팎에서 붓과 혀를 놀려 조정을 욕보이고 백성들을 분열시키고 있었다. 음습한 곳마다 그들은 독버섯처럼 퍼져 있어 쉬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바다를 지키면서 그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적만큼이나 그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세자의 몫이었다. 나는 바다에 있었다.


세자는 임금만큼 유능하지만 그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이였다. 나는 임금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그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길 바랐다. 과거의 패배 속에서 조정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지금은 밖의 적보다 안의 적들을 쳐야 할 때임을 알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파도처럼 자주 일렁였다. 나는 나의 마음이 바람처럼 달려가 세자에게 닿길 또한 바랐다.


오침에서 깰 때마다 병사들이 인사를 건넸고 그때마다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김노인과 병사들이 만선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길 나는 바랐다. 원없이 먹고 마시느라 피둥피둥 살이 오른 유노 소쿠요루와 그의 수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의 병사들도 먹어야 했다. 내 병사들의 목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그들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 줄 수 있었다.


해가 하늘 위로 조금 더 오르는 동안 수평선에서 겨울이 한 걸음 더 머리를 디밀고 있었다. 해가 내려오는 동안 밥의 시간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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