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지들이여,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과 경쟁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지배할 욕심도, 지배당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왕이 될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후손들은 여러분 중 그 누구에게도 종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오타네스
파도는 밀려갔다 밀려왔다. 파도처럼, 봉화가 오르내렸고 전령들이 드나들었다. 세상은 다시 급박해지고 있었다.
유노 소쿠요루는 본시 조정의 녹을 먹던 자였다. 과거에, 그는 여덟 번 낙방했고 아홉 번만에 겨우 붙었다. 뒤늦게 사헌부 말단으로 시작해 최고 수장인 대사헌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관복을 타고난 셈이었다. 의금부의 칼날이 목을 조여 오자 그는 조정으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받았다고 핏대를 세우다가 돌연 왜국으로 야반도주했다.
내 눈에 바다와 백성과 적이 세상이듯, 유노 소쿠요루의 눈에는 사헌부와 권력자와 범죄자가 세상이었을 것이다. 적을 벨 때마다 적의 피를 마신 나의 칼이 울었듯, 쥐를 때려잡을 때마다 쥐의 피를 먹은 그의 매도 울었을 것이었다. 그에게 사람은 쥐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매를 치켜들 때마다 사람들은 쥐처럼 오그라들고 쥐처럼 죽는소리를 냈을 것이었다. 나의 칼이 적의 피로 날마다 순결해지는 동안, 그의 매는 쥐의 피로 날마다 불결해졌을 것이었다. 나의 칼이 적을 베는 동안, 그의 매는 도깨비방망이로 변해 가고 있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있어서 그의 매에는 힘이 있었고,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일 수 있어서 그의 매는 맘껏 잔인했다. 매를 들면, 돈 가진 자들은 신발에 부은 술을 두 손으로 받아 마셨다. 매가 가진 힘에, 그는 매료되었다. 더 큰 매를 쥐고도 휘두르는데 서툴렀던 임금들과 멍청한 조정 대신들에게 그는 차마 굽신거릴 수 없었다. 조정을 뒤엎고 권력을 찬탈했던 대갈 장군을 그가 깊이 흠모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전란에서 패퇴한 뒤 사분오열되었던 왜국은 유노 소쿠요루에게서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고 열광했다. 돈에 굶주렸던 매국노들도 피의 숙청 뒤 펼쳐질 돈 잔치 생각에 침을 흘리며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유노 소쿠요루의 하늘이 열리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날조된 내용으로 사방에 방을 붙이고 다녔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들의 농간에 휘둘려 세자를 비방하고 유노 소쿠요루를 찬양했다. 조국의 땅을 짓밟은 왜놈들에게 기생하며 부와 권력을 축적한 매국노들에게 세뇌된 가련한 자들이었다. 노예로 살기를 구걸하는 자들이었다. 조국의 번영을 저해하는 아둔한 자들이었다.
탁주 한 병이 저녁상에 올랐다. 녹도 만호 정운과 다대포 첨사 송희립이 두고 간 것이라 했다. 병사에게 일러 둘을 불렀다. 내가 입을 떼지 않았기에, 둘도 잔을 들지 못했다. 내가 마셔야 둘도 목을 축일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마셨고, 말없이 헤어졌다.
왜의 악은 악착스럽게 조선의 땅에 들러붙어 있었다. 칼이 울었다. 적에게 닿을 수 없는 나의 칼에서 겨울바람 울음이 났다. 바다에서 조정은 멀었고, 칼은 벨 수 없는 적을 향해 몸속 깊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