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by 오종호

...

忳鬱邑余侘傺兮돈울읍여차제혜

吾獨窮困乎此時也오독궁곤호차시야

寧溘死以流亡兮영합사이류망혜

余不忍爲此態也여불인위차태야...


...

우울한 나는 희망을 잃은 채 지내노라.

이 시절 홀로 곤궁하니

차라리 홀연히 죽어 덧없이 잊혀진다 해도

나는 차마 이런 짓을 할 수는 없다...


-이소離騷 / 굴원屈原



해 뜨기 두 시진 전, 혹한기 전투에 대비한 첫 실전 훈련을 치렀다. 겨울 바다에서, 추위는 적보다 더 매서운 적이었다. 싸우지 않을 때, 싸우지 않음으로써 각자의 싸움을 싸워야 할 때, 추위는 저승사자처럼 배를 휘젓고 다녔다. 병사들은 싸우지 않는 겨울 바다의 고단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적은 이 바다의 슬픔을 모를 것이기에, 슬픔을 고스란히 떠안은 병사들은 겨울 바다의 밤을 지새울 수 있을 것이었다. 슬픔을 적의 몫으로 돌려놓기 위해, 병사들은 기꺼이 바다를 배회하는 사자들을 먼저 벨 것이었다.


병사들은 묵묵히 견뎌 내고 있었다. 정작 추위에 눈꺼풀이 녹아 내리는 자는 나였다. 송희립이 다가와 잠시 눈을 붙이라 속삭였다. 나는 괜찮다, 고맙다. 희립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잠시나마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그리 말했다. 장군, 형님, 형, 들어가세요. 들어가요, 제발. 희립은 간청했다. 형이 살아야 우리도 살아요. 형, 나한테 맡기고 들어가요.


희립아, 네 마음을 내가 안다. 우리, 유노 소쿠요루 죽이고 그때 자자. 맘껏 마시고 자자. 미안하다.


유노 소쿠요루의 아내는 요부였다. 어쩌면 소쿠요루에게 야망을 심어 준 것은 그녀였을 지도 모른다. 악마를 닮은 남자도, 여자에게는 무릎을 꿇는 것. 나는, 기무 가니를 생각할 때마다 자주 전율했다. 따뜻하게 안아 준 적 없는 나의 아내가 가엾어서 더욱 치를 떨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왜 이다지도 천박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내게 용상을 넘겨 준다 해도, 아니 대륙을 집어 삼켜 황제의 자리에 앉게 해 준다 해도, 나는 차마 나와 내 식구, 내 벗들을 위해 백성과 나라를 속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을 기망하는 것이 곧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리라.


훈련을 마치고 멀리서 해가 다시 고개를 내밀 때 나는 보았다. 병사들의 얼굴 위로 번져가는 햇빛의 찬란한 온기를. 희립아, 이런 것 아니겠느냐? 저 젊은이들의 얼굴에 노란 희망이 떠오르는 이 가슴 벅찬 아침을 선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고단함을 저들과 함께 나누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차마 못하겠다. 이들을 버리고 나 혼자 편하지는 못하겠다. 백성들을 외면하고 내 탐욕을 타오르게 하지는 못하겠다. 차라리 한 번의 전투를 더 치르고서라도, 하나의 적을 더 베고 죽을 수 있다면, 저 바다에 나의 피로 진혼곡을 울릴 수 있다면, 조선의 어부들의 환한 웃음을 위해 물고기 밥이 되더라도 여한이 없으리.


유노 소쿠요루와 기무 가니, 그리고 그 악녀의 어미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나는 다가올 긴 겨울밤을 홀로 지새워서라도 이 바다를 지키고 싶다.


그렇게 사라져도 그대들이 있기에 나는 아쉬울 것 없으리라. 그대들이 이미 나인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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