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화살

by 오종호


백성을 억압하는 왕의 잔인한 통치는 살인자의 흉포함보다 더 가혹하다. - 티루쿠랄



적은 침묵하고 있었다. 적의 침묵과 나의 침묵 사이에서 바다는 술렁거리고 있었다.


적에게 바다는 길이었고 나에게 바다는 성이었다. 바다로 들어서는 순간 적은 넘을 수 없는 나의 성벽과 마주할 것이었다. 찾아지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적은 침묵하고 있을 것이었다. 적은 침묵했지만 적은 포기를 모르는 자였다. 침묵의 끝에서 적은 방법을 찾을 것이었다. 넘어설 수 없는 성으로 길을 내기 위한 적의 선택은 한 가지 뿐이었다. 적은, 안에서 성문을 열고자 할 것이었다.


허리를 길들이기 위해 활을 잡았다.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원의 말을 들어 오십 보 거리에 과녁을 두었다. 시위를 부드럽게 당겼다. 손가락 끝에서 화살이 뱀처럼 춤추며 날았다. 뱀처럼 흔들리는 화살로는 적의 목을 뚫을 수 없었다. 몸 밖으로 시위를 끌어당겼다. 왼쪽 허리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활이 나의 힘을 버티듯 허리도 활을 견뎌 주어야 했다. 바다에서, 나의 화살은 반드시 의도를 가져야 했고, 어떤 의도도 목표를 벗어나서는 안 되었다. 나의 화살은, 적의 갑옷을 부수어 적의 몸을 찢을 정도가 되어야 했다. 대장선에서 날리는 대장의 화살은 적의 심장을 갈구하는 모든 병사들의 마음 같아야 했다. 화살이 범처럼 날았고 과녁에 깊이 박혔다. 나의 허리는 나의 마음을 버텨 줄 것이었다.


유노 소쿠요루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란을 통해 매국노들이 왜보다 더 간악한 자들임을 몸소 겪은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치를 떠는 것이 정상이었다. 유노 소쿠요루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한 백성들의 기대는 잔혹하게 짓밟힐 것이었다. 그가 조선의 땅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광포한 피바람이 불 것은 자명했다. 그를 지지하는 자들은 이미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었다. 이 땅을 저주하는 망령된 허수아비들에 불과했다. 박종과 그라공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에게 갱생의 여지는 없을 것이었다.


적이 노리는 것은 분열의 틈이었다. 나는 성벽으로 적의 길을 끊을 수는 있어도 나의 뒤에서 열리는 성문을 닫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바다의 성은 싸우지 않고는 지켜지지 않는 것이었다. 지혜로운 세자는 성군이 될 것이었다. 성군의 자질과 능력을 가진 세자를 버리고 유노 소쿠요루에게 성문을 열어 주는 순간 나의 성도 무너질 것이었다. 조선도, 조선의 백성들도 힘없이 내려앉을 것이었다.


술렁이는 바다 위에서 칼이 바르르 떨었다. 적은 침묵했지만 나는 바다 위에 있었다. 나는 적의 길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조선의 범처럼 울며 성벽 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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