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인민들이여, 깨어 있으라. 이것은 그대들의 문을 두드리는 나의 마지막 소리다. - 에두아르도 치바스
해가 구름 뒤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바람은 잠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배에 송진을 바르고 대나무를 베어 화살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우리의 성이 튼튼할수록 적의 길은 적의 무덤으로 변해갈 것이었다.
세자는 남도를 순시하고 있었다. 그는 백성들의 낮은 소리를 허리 숙여 듣고 있을 것이었다. 전장에서 그랬듯이, 세자는 백성들에게로 한없이 흘러 내려갈 것이었다.
세자가 통제영의 지척까지 온다는 얘기를 전령이 전했을 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송희립만을 대동하고 길을 나섰다.
장군.
저하.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하.
노고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장군께서 지켜 주신 땅에서 하는 나랏일입니다. 힘들 리가 있겠습니까?
저하...
세월을 먹은 세자의 머리카락도 많이 하얘져 있었다. 부강한 나라의 행복한 백성들을 꿈꿔 온 그의 눈동자는 작은 눈 속에서도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전란 이후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월종 임금은 혜민서 의원들을 전국으로 파견하고 지역 의원들과의 일사분란한 방역 체제를 구축해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허나 줄어든 백성들의 통행량으로 인해 곤란을 겪은 상인들의 불만을 매국노들은 깊이 파고 들었다. 그들은 차라리 왜가 다스리던 시절이 살기 좋았다면서 무능하고 부패한 임금을 내리고 왜의 통치를 받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떠들어댔다. 매국노들은 백성들을 만나서 세자가 하는 말을 제멋대로 뒤틀어 방이랍시고 붙이고 다녔고, 그들의 의도에 부화뇌동한 백성들은 세자가 아니라 유노 소쿠요루에게 조정을 넘겨야 한다고 악을 썼다.
유노 소쿠요루가 끝내 선전포고를 했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신이 살아 있는 한 적은 바다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알고 있습니다, 장군. 나는 우리 백성들을 믿습니다.
등 뒤에 꽂히는 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다에서, 보이는 적의 적의敵意는 늘 선명해서 받아 내기 수월했다. 아군의 모습으로 등 뒤에 섞여 있는 적은 보이지 않아서 섬뜩했다. 왜의 정신에 물든 자들은 왜의 간교함까지 핏속에 빨아들였고, 그들의 혓바닥에 놀아나는 백성들은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장군께서 병사들을 믿듯 나도 조선의 백성들을 믿습니다.
예, 저하.
긴 낮잠에서 깨어난 바람은 밤이 깊을수록 쌩쌩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세자의 눈은 오래도록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등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장군 등 뒤엔 늘 제가 있응께로 걱정 허덜덜 하지 마시고 늘 앞만 보십시오, 장군.
보이지 않는 세자의 눈을 향해 다시 인사하고 돌아섰을 때 희립이 말했다. 대답 대신 희립의 등을 여러 번 두드렸다. 나는 세자도 앞만 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