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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01. 2021

일상의 논어 <학이學而1>-시습時習

<<논어>>를 오늘날 우리의 일상의 관점에서 살피고 <<주역>> 텍스트 중 함께 읽으면 좋은 대목을 덧붙여 읽는 시도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늘 반복하여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학學은 배우는 것이요 습習은 익히는 것입니다. 두 글자의 어원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학습은 학문을 닦는 것이요 공부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습時習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습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학의 내용 곧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시時는 흔히 '때때로'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틀린 풀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동의하기는 어렵지요. 적어도 '수시隨時로' 정도의 뉘앙스는 살려야 합니다. '늘 반복하여'의 의미가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때의 학學은 '늘 반복하여 익혀야 하는 배움'의 뜻이 됩니다. 그렇기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암기식 복습이나 한 번 읽고는 아무데나 내팽개치게 되는 류의 책들을 읽는 것은 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거듭해서 읽고 사유하며 정신의 깊이를 더해 가는 독서, 그 깊이로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바꾸는데까지 나아가는 독서를 우리는 학의 성격으로 봐야 합니다.


학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 제게는 명리학과 <<주역>>으로 압축되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통찰학'이 시습時習하는 학學입니다. 늘 기쁨을 얻으니 제대로 만난 학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주역>> 4괘 산수몽괘山水蒙卦에서 바른 마음과 순수한 열정으로 추구하는 앎과 지혜의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붕朋은 벗, 친구로 번역되는 글자이지만 무리(衆)의 속성이 강한 글자입니다. <<주역>>에서는 2괘 중지곤괘 괘사(坤 元亨利 牝馬之貞 君子有攸往 先迷後得 主利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곤 원형이 빈마지정 군자유유왕 선미후득 주리 서남득붕 동북상붕 안정 길 / 곤은 원형리元亨利의 단계를 거쳐 하늘을 따라 정貞한다. 군자가 이 이치에 따라 나아가면 처음에는 헤맬지라도 나중에는 얻는 것이 있게 되니, '원형이 빈마지정'이란 곧 이로움을 주관하는 것이다. 서남에서는 벗을 얻고 동북에서는 벗을 잃게 되니, 끝이 편안하고 길할 것이다)에 처음 등장하지요. 같은 뜻을 가져 마음이 통하는 '동지'의 개념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터전과 하는 일은 달라도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일치하고 인간과 생명, 그리고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 곧 언제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시간을 내어 찾아올 때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법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남다른 실력을 갖춰도, 강한 책임감으로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면 마음이 허전하고 괴롭겠지요. 괜시리 타인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분발하는 사람이라면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주역>> 9괘 풍천소축괘風天小畜卦의 괘사와 62괘 뇌산소과괘雷山小過卦의 육오에 '밀운불우 자아서교 密雲不雨 自我西郊 /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때가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고 자중하는 사람, 그가 진정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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