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by 오종호

...당신들은 결코 우리에게 명령하거나 폭정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알기 때문이다. 그 길은 자유와 명예와 존엄의 길이다... 우리는 폭력에도 돈에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 가말 압델 나세르


아침에 까치가 울었다. 해가 얼굴을 내밀 무렵부터 까치 여러 마리가 통제영을 날아다니며 즐거이 울었다. 반가운 손님이 올 징조였다.


경기도방어사 권준이 부장들과 함께 통제영에 당도한 것은 점심께였다. 초소병들이 그를 알아보고 환호성을 올렸고 무리 중의 하나가 부리나케 내게 달려와 알렸다.


이 사람, 권준.

장군.

까치가 자네를 보았던 게로군. 어인 일인가?

충청도병마절도사 부임을 명 받고 며칠 말미를 얻어 뵈러 왔습니다.

잘 왔네.


전라좌수영에서 나는 순천부사 권준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와 자주 전략을 논의했고 활을 쏘았으며 말을 달리고 가끔 술을 마셨고 바둑을 두었다. 그리고 우리는 적과 싸워 매번 이겼다. 전란이 끝나고 박종 임금과 그라공주가 옥에 갇힌 후 우리는 처음 만났다.


병사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취사장에서, 우리는 그 옛날 승전 다음날처럼 웃었다. 희립도, 운도, 순신도, 완도 다같이 웃었다. 나의 부하들이 웃었다. 나의 벗들이 웃었다. 가슴이 자주 울걱거렸다.


소식은 자주 듣고 계십니까?

전령이 다녀가네.

적과 매국노들이 큰 계책을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함대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얘기했다. 우리의 얘기를 들은 바람은 대장선으로 달려가 깃발들을 나부꼈다.


그럴 테지.

장군께서 도성을 치실 것이라는 유언비어도 돌고 있습니다.

들었네.

조심하셔야 합니다, 장군.

적의 간계에 흔들릴 전하와 세자가 아니시네.

전하께서 역도들을 너무 무르게 대하신 탓 아닙니까?

천성이 그러하신 것을 어찌하겠는가?

산조대왕의 한이 반복될까 염려됩니다, 장군.


산조 임금은 삼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했으나 반역의 무리를 벌하지는 않았다. 종통을 둘로 나누지 말라는 금조 임금의 유지를 이유로 내세웠다. 관용에 반성으로 응답하기를, 그는 바랐을 것이다. 역도들은 산조 임금을 독으로 죽였다.


노종 임금을 죽인 역적의 무리들을 월종 임금도 살려 주었다. 그들이 권좌에 올린 박종과 그라공주가 투옥되었을 때 그들은 살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종 임금과 월종 임금은 평생의 벗이었고 형제였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자 그들은 다시 이빨을 드러냈다. 죽이지 않는 적 앞에서 적은 두려울 것 없다는 듯이 물어뜯었다. 임금도, 형판도, 한성판윤도, 그리고 세자도, 그들은 왜와 손잡고 침을 질질 흘리며 물고 뜯었다.


절도사,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두려움 때문일세.

두려움...?

세자는 산조와 월종 임금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 그 두려움 앞에서 적은 자멸할 것이네. 우리가 바다에서 적을 맞을 때 나의 두려움은 백성들의 죽음에 있었지.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서 적을 막지 못할까 나는 늘 두려워했다. 허나 지금 적의 두려움은 자신들의 죽음을 보는 데서 온다네. 적의 두려움이 세자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것이네.


살기를 원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없었다. 요노 소쿠요루와 역도들은 하나같이 싸워 본 적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죽여 본 자들에 불과했다. 싸우지 않고 죽이는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죽인 죽음은 허상일 뿐이었다.


그들이 살고자 한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고자 하기 때문에 죽을 것이었다. 적에게 죽음의 실체는 자신들의 죽음 뿐이었다. 적은, 살아 있는 죽음을 보았으므로 싸움에 질 것이었다.


바다에서, 싸움은 늘 또렷했다. 땅의 싸움도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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