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을 며칠 앞둔 달이 밝았다. 달은 언제나 제 몸을 깎아 어둠으로 돌아갔고 어둠 속에서 달은 어느새 살이 올랐다. 달이 죽고 사는 동안 사람도 죽고 다시 살았다.
김노인이 죽었다. 질겨서,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 같았던 그의 목숨은 찬바람에 허망하게 끊어졌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나의 손을 잡았던 김노인의 손은 풀잎처럼 가벼웠다. 주름진 그의 눈가를 따라 연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노인의 시신은 곱게 화장되어 그가 사랑했던 바다에 뿌려졌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바다가 되었다. 김노인이 떠난 날, 마을에서는 아이가 태어났다. 사람이 죽고 사람이 다시 왔다.
하늘에는 별도 많았다. 별은 헤아릴 수 없는 적의 병력과도 같았고, 별은 다시 허망하게 스러져간 조선의 백성들과도 같았다. 나의 하늘에 뜬 별은 적의 하늘에도 떠 있을 것이었다. 별은 어디에나 같은 별로 같은 하늘에 박혀 있었지만 땅에서 사람은 나뉘어 있었다. 적의 땅에서 적은 나의 땅을 노리고 있었고 나는 바다에 있었다. 적과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만 적과 나는 같은 땅에서 살 수 없었다. 적은 나의 피를 원했지만 나의 피는 적의 것이 아니라 바다의 것이었다. 세자가 즉위하고 유노 소쿠요루가 무너질 때 나는 마침내 나의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조선 어부들의 바다, 조선 수군들의 바다, 그리고 김노인의 바다는 또한 나의 바다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자월의 바람에 뼈가 시렸다. 가뜩이나 먹을 것이 모자란 겨울에 먹지 못한 몸들은 추위에 마른 오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삶은 감자 하나씩을 아껴 먹는 깡마른 병사들의 시커먼 얼굴을 보며 나는 쌀가마니를 생각했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동안 조정 대신들이 곳간마다 쌓아 두었던 쌀가마니는 고스란히 적의 군량이 되었다. 나의 병사와 백성들을 먹일 나의 쌀을 박종은 무던히도 빼앗아 갔었다.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적과의 싸움을 위해 군량은 지켜져야 했다. 왜와 손잡은 유노 소쿠요루의 반역이 진압되면 병사들이 농사 지을 시간은 더 많아질 것이었고 백성들과 병사들의 얼굴엔 다시 살이 오를 것이었다.
감은 눈으로 자꾸 별이 쏟아져 모처럼 점을 쳤다. 택화혁괘 구오 동을 얻었다. 하늘은 세자의 즉위를 예비해 두고 있었다. 세자의 정치는 조선을 변화시킬 것이었고 변화된 조선에서 백성들은 풍요로울 것이었다. 풍요로운 조선에서 역도들이 발 붙일 자리는 없었다.
간만에 잠은 달고 길었다. 꿈에서 김노인이 풍어가를 부르며 연신 큰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김노인이 월척을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어죽을 쑤어 백성들과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