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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22. 2021

일상의 논어 <학이學而12>-절節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왈 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 사위미 소대유지 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에는 화합이 귀하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고 큰 일에 이 이치를 따랐지만 행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화합을 알되 화합하기만 하고 예절을 쓰지 않는다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공자는 인仁의 실천 방법으로 예禮를 강조했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그것입니다. '예지용 화위귀'는 '예를 쓰는 까닭은 화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의 뉘앙스로 읽는 것이 무난합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예법禮法를 제정하고 제례祭禮 등의 의례儀禮를 지켜 공공 행사들을 주관한 것은 때에 맞춰 공직 기강을 바로잡고 백성들과의 정신적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경우 <<국조오례의>>에 담긴 오례(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의 예는 가례家禮가 되어 백성들의 삶과 의식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국가의 리더 입장에서 국민이 화합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대립과 갈등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뿐만 아니라 일사불란한 정책의 실행과 성과 창출에도 장애가 되지요. 위의 선왕들이 국가적 대소사에 있어서 예법을 따른 이유이자,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국민통합을 부르짖은 연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왕들이 하지 않은 바가 있다고 유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뒤의 구절은 화합하기 위해 예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화합이라는 목적만을 강조해 예라는 형식을 간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즉, 선왕들이 하지 않은 바라는 것은 화합이 중요하다고 해서 예를 등한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절도가 무너지기 때문에 결국 기대하는 화합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유자의 의도를 '예절'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예를 썼지만 뒤에서는 예절을 썼지요. '절도 있는 예'로 이해하면 됩니다.  


절도를 지키지 않으면 절제력을 잃게 됩니다. 예를 들어, 회사 워크샵에 가서 준비한 절차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신 화합을 중요시한다고 음주가무에 집중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피곤한 몸과 두통 밖에 없을 것입니다. 워크샵에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안들조차 만들지 못하는 조직의 팀워크가 단단해질리 만무합니다. 술기운에 함께 흥을 낸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게 되지요.    


'마디'를 뜻하는 절節은 절도이자 절제이며 곧 중용입니다.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예라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는 절節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지점인 지나침과 모자람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절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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