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III

신을 만난 남자와 신이 된 남자의 승부

by 오종호

영진은 회장의 호출을 받고 올라간 회의실에서 받은 제안을 즉석에서 수락했다. 회장은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룹사를 망라하여 간부급 인재들을 모아 각자의 전문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게 함으로써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모델들을 개발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최고의 인재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창의적인 인재들이 제한 없는 상상을 하고 그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원들의 반발을 원천 봉쇄할 수 있도록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여 특별 대우하겠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영진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회장의 장황한 말은 화려했지만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가 봉투를 꺼내 영진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열어 보라고 재촉할 때 그의 말은 매력적으로 이해되었다.


봉투 안에는 1억원짜리 수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승선 대가라고 회장은 말했다. 최소 2년간 봉투 안에 든 금액만큼의 연봉과 보너스를 보장한다고 했다. 보너스는 통장에 찍히는 월급과는 별도로 연봉의 합계에 해당하는 금액을 별도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사 중간에 천재지변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된다고 해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계약금 2억원과 2년간의 연봉과 보너스를 합해 총액 10억원이 보장된 제안이었다. 그리고 임무를 완료할 시 성과급 5억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임무에 대한 얘기는 추가로 할 것이라고 했다. 돈은 기본이고 기대에 부응할 시 그보다 더 짜릿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회장이 무엇을 하려는 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받아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거절하는 순간 돈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었고, 기분이 상한 회장이 자기의 회사 기획실에 놓여져 있는 책상 하나를 없애는 것은 파리를 때려잡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프로젝트 법인으로의 이직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인트라넷을 통해 미래전략실의 역할을 담당할 신생 자회사의 출범을 알리는 회장의 비장한 각오가 장황하게 공지되었다. 전 그룹차원의 브레인 기능을 수행할 신개념의 미래가치 창조 조직으로서 모기업은 물론 전 계열사의 핵심 인재들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직 대상자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총 33명이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며칠 후, 예정된 각본대로 기획실장 박전무는 기획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진의 퇴사를 공표했다. 영진은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직원들의 놀란 눈들을 상대했다. 박전무는 영진의 개인 사정상 송별회를 생략하기로 했다는 말을 끝으로 본인의 방으로 돌아갔다. 팀원들은 영진의 주위에 몰려들어 어찌된 일이냐고 캐묻기도 하고, 어떻게 자기들에게 아무런 말없이 회사를 떠날 수가 있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미래전략실의 인재로 발탁하지 않은 임원들의 무능에 대해 그렇게 감정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누군가의 질책성 질문에도 영진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나중에 술 한잔하며 얘기하자는 대답과 함께 자신의 짐을 챙기는 것으로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주차장까지 따라 나온 팀원 몇 명과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영진은 공식적으로 짧았지만 화려했던 직장생활의 한 장을 마감했다. 결혼한지 2년이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오전에 아내가 관리하는 통장이 개설된 은행 두 곳을 제외한 다른 은행 두 곳에 들러 각 1억원씩 예치한 영진은 회장이 건넨 돈 봉투에 들어있던 주소로 차를 몰았다. 도착 예정 시각은 오후 2시였다. 열린 차창을 파고 들어 코끝을 간질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오랜만에 자유인으로서의 쾌감을 선사했다. 기분이 상쾌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직 보너스, 그리고 보장된 높은 연봉은 웬만한 직장인이 단기간 내에 모으기 어려운 목돈이었다. 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고 육성할 조직 멤버 33명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자부심은 그런 기분에 콧노래를 더하게 만들었다. 2년 후에 조직이 와해되더라도 2년간의 고생을 마치고 나서 확보된 돈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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