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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an 21. 2022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12>-군자불기君子不器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역시 널리 알려진 유명한 표현입니다. 유가儒家에서 군자는 대인大人과 더불어 쓰이는 용어이지요.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타인에게서 찾는다'라고 했습니다. 군자는 이렇게 소인과 대비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늘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 성인聖人이라면 군자는 그 수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세속적인 세상의 기준으로는 '탁월한 리더형 인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the superior man'이라고 번역됩니다. 우리말로는 '큰 사람'이 군자에 대응하는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器'는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그릇은 저마다의 용도에 따른 쓰임새가 정해져 있지요. 간장종지에 밥을 퍼 담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릇은 기능인(technician)이나 장인(meister, artisan, wright 등)과 같은 특정 영역의 전문가(expert, specialist)를 상징합니다. 광고전문가, 마케팅전문가, 스피치전문가, 여론전문가, 주식전문가, 인공지능전문가 등 오늘날의 세계에는 전문가가 넘쳐나지요. 사회의 전 영역이 촘촘히 세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군자란 그런 전문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의 단호한 말을 들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되물어야 합니다. "그럼 군자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질문에 공자는 어떻게 답할까요? 공자의 대답을 예상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제거해야 할 개념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릇의 전문성에 대비되는 일반성(generality)이나 보편성(universality), 전문성의 한계를 확장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통섭(consilience)입니다. 그것들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가 위에서 정의한 탁월한 리더형 인간 곧 '큰 사람'의 속성으로는 적합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등야君子燈也, 군자는 등이다', 제가 공자라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등燈에서 우리는 각 그릇의 고유한 전문성을 두루 이해하고 그들의 능력을 파악하는 지혜로운 눈, 그들 중에서 최대한 유능하고 신실한 그릇들만 사심없이 선별하여 상床이라는 무대(국가, 사회, 기업, 조직)에 배치하는 공명정대한 마음, 그들 저마다의 능력이 최대한 빛을 발하면서도 조화롭게 정갈한 상차림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기를 불태워 희생하는 솔선수범의 태도를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사물로 은유하시겠습니까?




등하불명燈下不明, 리더의 빛이 닿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그릇은커녕 26년간 차가운 칼로 살아온 남자가 등이 되고자 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잘 차려진 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 정도로 보입니다. 어둠 속에서 빈 그릇들이 우격다짐하며 저마다 분에 넘치는 것들을 쓸어담느라 지저분해진 상 위의 모습이 참 볼만하겠지요. 머지 않아 상다리가 부러져 상이 엎어지는 꼴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런 자를 등燈으로 올려 따뜻한 희망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밥상을 엎는 취미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집에 있는 밥상이야 날마다  번을 엎어 버리든 각자 좋을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신명나게 세계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나라의 분주한 상다리를 죽어라고 부여잡고 부러뜨리려는  못된 심보만큼은 도저히 봐줄  없습니다. 당신들에게 군자란 돈과 권력이 들어있다면 똥오줌 속이라도 기꺼이 받아먹을 변기 정도 되는 건가요? 그대들의 집에 멋드러진 붓글씨로 써서 붙여 놓으면 어떨까요? '군자변기君子便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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