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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an 27. 2022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14>-주비周比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기에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 지을 뿐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 



군자와 소인이 무리 짓는 방식을 주周와 비比로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절에 등장하는 군자와 소인은 일반 국민보다는 아무래도  사회의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있지요. 주周는 화합과 연대, 비比는 분열과 차별의 관점에서 읽으면 됩니다.


比는 '견주다'의 뜻으로 비교比較, 대비對比와 같은 단어들에서 그 쓰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比에는 '돕다'의 의미도 있는데 주역 8괘인 수지비괘水地比卦에서 이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두 사람이 나란히 붙어 매우 가까운 모양'이라는 자상字象에서 의미를 따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소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만든 패거리의 개념이 됩니다. 반면 주周는 넓은 영역(冂)에 다함께 어우러져 길吉함을 공유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수구 기득권층만큼 비比의 특징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집단도 드뭅니다. 인조 반정 이후 그들은 언제나 불의와 부정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익과 권력을 독점해 왔지요. 친일과 친미, 친독재, 반민주, 반통일의 입장은 언제나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한 그들만의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국민의 삶을 위한다는 민생의 기치 아래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지요. 두루,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란 그들의 구상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주역이나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의 자질과 역량, 태도는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민이라면 그 둘을 혼동한 채 소인을 지지하는 일이 가능하기 어렵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수구 세력에게 표를 주겠다는 어리석은 자들이 존재하는 한 군자를 가장한 소인이 권력의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국가와 국민의 미래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처해질 수밖에 없지요.


작금의 대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카르텔 만의 부와 권력을 추구할 뿐 국민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고 저항하는 국민은 모조리 무력으로 짓밟을 것이 뻔한 무능한 소인과 국민의 행복과 국민의 터전인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심없이 자신의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것이 분명한 군자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는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문제입니다.   




연월일시 작괘법을 사용하여 임인壬寅년으로 주역괘를 뽑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에서 임壬은 아홉 번째 자리에 있어 숫자 9가 나옵니다. 9를 8(팔괘)로 나누면 나머지가 1이 되지요. 선천팔괘의 순서인 '건태리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의 처음에 건이 있으니 외괘(상괘)는 건괘가 됩니다.


지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에서 인寅은 숫자 3이 되고 3을 8로 나누면 나머지가 3이 되지요. 그래서 내괘(하괘)는 리괘가 됩니다. 그리하여 13괘 천화동인괘가 만들어집니다.


임수의 9와 인목의 3을 더하면 12가 되는데 이를 6(육효)으로 나누면 나머지가 0(=6)이 되어 상효가 동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괘는 49괘 택화혁괘가 되지요.


천화동인괘 <단전>에서 공자는 '오직 군자만이 능히 천하의 뜻과 통할 수 있다(唯君子爲能通天下之志)'고 했습니다. 천화동인괘의 괘사(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 이군자정 / 들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형통할 것이다. 큰 내를 건너도 이로울 것이다. 군자가 바르게 해야 이로울 것이다'처럼 주周의 화합과 참여의 정치를 펼 사람, 그리고 썩은 수구 기득권 카르텔을 타파하고 역동적인 공정사회로의 변화를 이뤄 낼 택화혁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하늘에서 태양을 지목하는 것만큼 쉬운 일입니다.   


대산 김석진 선생님의 아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천화동인과 택화혁의 의의意義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8851#home




역술인易術人이나 역술가라는 단어는 역학을 깊게 공부한 정통 학자나 요즘 회자되는 무속인들을 싸잡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됩니다. 내심 "다 같은 점쟁이 아니냐?"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같은 술術 자를 쓰면서 예술藝術이나 의술醫術, 기술技術은 대우하고 역술은 무시합니다. 그것이 주류 학문 체계에 편입된 지 오래임에도 서양의 과학 기술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 따위로 치부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심리학은 존중하면서 명리학은 무시하지요. 냉정히 얘기해서 140여 년의 실험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역사와 수천 년에 달하는 역학의 역사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마음의 이치(심리心理)를 연구하는 학문이 운명의 이치(명리命理)를 밝히는 학문에 편입될 수 있을지언정 그 역逆은 불가능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심리학자이듯 역학을 공부한 사람은 역학자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명리학자요, 명리학을 도구로 상담에 임하는 사람은 명리가로 불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명리학이나 주역은 그 이치에 눈을 뜨는 데 매우 오랜 공부를 요하는 깊은 학문입니다. 이치를 깊게 궁구하지 않고 가볍게 활용하는 것이 문제일망정 학문의 정수에 진입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투여되어야 합니다. 술術 아니라 학學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통찰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선승禪僧들처럼 오랜 수행을 거치거나 역의 이치를 깨우치지 않고는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가짜 통찰일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유명인들 중에 마치 세상과 인간의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듯이 무당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느 사업가와 정신과 의사입니다. 사업가는 자신이 반 무당이라면서 사람들에게 외모를 바꿔야 돈을 번다는 둥의 헛소리를 남발했습니다. 값비싼 고급 정장 등으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 업무와 관련하여 만났던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단 한 번만 봐도 상대의 속을 훤히 들여다본다면서 상대는 입도 뻥끗 못하게 한 채 되도 않는 요구들을 장황하게 떠들어 댔습니다.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겠지요.


뭔가 안다고 착각하여 오만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위험하지요. 지금의 대선 정국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후보가 있습니다. 그런 자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지요. 그는 정의의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마땅한 자입니다. 그가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잣대의 1억 분의 1 조각이라도 일반 국민에게 들이대는 것만큼 그에게 적용되었다면 그는 이미 햇빛을 보기 어려운 상태일 것입니다.


역학이 아니라 역술을 국가 운영이라는 공공 영역에 사용할 가능성은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대통령을 가진 경험이 있습니다. 역학의 활용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개인들이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길道을 제시하는 것, 개인적 차원에서 세상의 흐름을 통찰하고 변화를 예측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사업가나 정신과 의사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는 결코 국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화를 내며 억누르려 할 뿐입니다. 이 정도를 추론하는 데는 역학이 아니라 상식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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