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Jan 30. 2022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15>-망태罔殆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부란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생각을 신장하는 노정입니다. 생각의 크기가 자랄 때 비로소 지혜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학學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학이>편에서 충분히 살펴바 있습니다. 


배우기만 한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에 집중한다는 얘기입니다. 학문과 사람의 권위에 눌려 수용과 해석의 단계에 머물고 마는 것이지요. 자기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배움이란 무용한 것입니다. 한 인간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뇌에 담을 수는 없지요. 공부를 통해 생각의 크기가 자라야만 경험하거나 배우지 않은 분야의 것이라도 통찰하고 직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읽고 익힐 것인지 학學의 틀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기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타인의 언어에 매몰되어 있는 한, 암기나 인용 기계에 머물게 됩니다. 자기의 언어로 업그레이드되어 삶 안으로 녹아들지 못하는 타인의 언어란 봄이 되면 녹아 버리는 눈처럼 되기 십상이지요. 영혼을 성숙시키지도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죽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배워도 배워도 앞이 밝아지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지식에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과거의 유산을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여 현재의 판단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무용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가 짐짓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배움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만용에 불과하지요. 


경험과 관계를 통해 형성된 자아에만 판단의 근거를 두는 사람들 중 특히 사업을 통해 성공한 이들의 위험도가 더욱 높습니다.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믿기에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고 배움의 가치를 폄훼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개인이 타고난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역량을 확대해 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새로운 판단의 모닥불을 지필 생각의 장작이 고갈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변화의 누적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므로 해석되지 않고 추론되지 않는 사안과 맞닥뜨리는 횟수가 증가하면서 배우지 않은 한계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전과는 달리 기획에 따른 실행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잦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공허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은 맹목'인 셈입니다. 생각의 힘을 가져 밝아지면 영혼이 충만하게 될 것이요, 배움의 빛을 충전하여 안정되면 생각의 힘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14>-주비周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