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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r 07. 2022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24>-첨용諂勇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공자가 말했다. "모실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 의를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앞 문장은 시대상을 감안하여 종교적 관점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공자의 시대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지배층의 특권과 같았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리더의 덕목 입장에서 윗 구절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종교의 자유가 있고 정치 지도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적 이익이나 표를 위해 법을 어긴 특정 종교 단체를 봐주는 것은 종교의 자유와 무관한 것이지요. 특히 그 위법 행위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방조와 다름없는 짓입니다. 공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에게는 리더의 자격을 논할 수 없습니다. 천박한 아첨꾼일 뿐이니까요. 



안내견들은 시각 장애인들의 눈이 되어 수행자와 같은 삶을 살다 갑니다.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충분히 경의를 표할 만합니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동상 앞에서 잠시 경건한 자세로 묵념하는 것은 안내견들의 희생적인 삶에 대한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적절한 행위가 되지요. 상체까지 굽히며 과한 예를 표한 모 대통령 후보의 행동이 비판 받은 까닭은 그의 평소 행실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늘 낮은 자세로 국민과 역사 앞에서 겸허하게 처신했다면, 반려견과 식용견이 구분된다는 식의 말로 한심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위의 행동이 과할지언정 비난 받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강하다 보니 상식에 어긋나는 과도한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첨꾼의 예의는 늘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하기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법입니다.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 세울 막중한 책임과 막강한 권한을 부여 받은 자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권한을 남용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자신들의 범죄를 정의로운 사람에게 덮어씌운 철면피들의 후안무치는 비겁함의 발로이자 세상을 자기들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만용에 불과합니다. 


이런 자들의 권력 탈취 욕망을 좌절시키고 국민과 역사의 법정에 세워 엄하게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의를 행하는 용기이지요. 견리사의見利思義해도 모자랄 판에 의義를 저버리고 이利만을 좇은 주제에 검찰 제국을 세워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국민 위에 군림하기를 획책한 이들을 일단 추상같은 표로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조 카르텔에 동조해 온 썩은 언론과 수구 정치 세력을 일소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다시는 불의한 자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기획조차 할 수 없는 공정한 사회를 완성해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TrdLAL3A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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