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5>-매사문每事問

by 오종호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자입태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지례호 입태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공자는 태묘에 들어갈 때 매사를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냐? 태묘에 들어가서는 일마다 다 묻더라."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것이 예이다."



태묘는 주공의 위패를 모신 노나라의 사당입니다. 예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공자가 와서는 태묘의 제례에 대해 이것저것 다 묻고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본 어떤 사람이 혀를 끌끌 찼던 모양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공자 그거 대단하다더니 다 허명이었어. 아 글쎄, 태묘에 와서는 거기 담당자한테 제사 지내는 법에 대해 하나하나 꼬치꼬치 다 물어보더라니까!" 정도로 떠들어댔겠지요. 돌고 돌아온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빙긋 웃었을 것입니다.


鄹는 공자의 부친이 살던 노나라의 지명이니 '추인'은 곧 공자의 선친 숙량흘을 지칭합니다.


이론적 앎은 근본적으로 현장성의 결여라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시기, 장소, 경우는 물론 지역 문화나 심지어는 사람들의 개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것이 제사 의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도 한 나라 태조의 묘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이론적 앎이 아니라 이론이 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실체화된 현장적 지식이 중요하다고 공자는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현장의 실천적 지식인에게 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라는 가르침을 공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실천은 반드시 이론에 대한 사전적 이해와 그것에 기반한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는 것이 없고 관련 경험도 전무하면서 예의마저 없는 리더가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 그릇된 의사결정을 고수하면 현장의 업무들은 목적도 방향도 없이 표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불행한 결과는 공동체에게 전가되고 맙니다.


전문가랍시고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듯이 현장에 가서도 귀 대신 입 만 여는 자가 진정 아는 자일 리 없듯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며 밀어붙이는 자가 펴는 정책이 민주적일 리 만무합니다. 얄팍한 사적 이익에 대한 탐욕과 자기 분야의 이해 관계만 고려하는 근시안적 사고방식으로 공동체의 발전을 가로막고 공동체의 가치를 위기에 빠뜨리는 선택을 한 자들은 지성과 인성이 결여된 무례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힘겹게 쌓아 올린 공동체의 성취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망친 그 예의 없음의 근간에는 파렴치한 우매함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지요. 설치류 정도의 인식 능력으로 세상을 판단하면서 그것이 맞다고 고집하는 자들의 멍청함을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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