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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08.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6>-사부주피射不主皮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부주피 위력부동과 고지도야


-공자가 말했다. "활쏘기에서는 가죽 뚫는 것이 주되지 않는다. 힘을 다해도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 옛 도이다." 



앞서 <팔일> 7편에서 우리는 군자다운 경쟁적 유희 수단으로서의 활쏘기에 대한 공자의 인식을 본 바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활쏘기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갑니다.


피皮는 동사로서 '가죽을 벗기다', '가죽을 떼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활쏘기와 연관되니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과녁을 뚫는 것입니다. 공자는 활쏘기란 과녁을 맞추는 것이 주이지 과녁을 뚫는 것이 주가 될 수 없는 경기임을 말합니다.  


그 근거로서 질긴 피혁으로 덮인 과녁을 뚫는 데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듭니다. 예의의 놀이인 활쏘기의 본질은 힘이 아니라 정확도에 있다는 지적이지요. 


'위력'은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동과'는 '과가 같다, 등급이 같다, 등차가 없다'의 개념이니 '부동과'는 '차이가 있다, 차이가 생기다'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활쏘기 매니아라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활쏘기를 빌려 공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문文이 주를 이루는 태평성대의 활쏘기는 '집중력 놀이'의 외형을 띤 심신 수양과 우정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이 무武가 지배하는 난세의 활쏘기는 오직 '적군 살상' 수단의 성격 만을 갖습니다. 적의 갑옷을 뚫어야 하고 다소 빗맞더라도 적을 상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날아가야 적의 전투력에 손실을 입힐 수 있습니다. 강함이 미덕인 이유이지요.


결국 공자는 활쏘기에 빗대어 오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 간에는 국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 힘의 불균형을 전쟁으로 해소하는 것이 국가 관계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군자들이 활쏘기로 서로 경쟁하며 우의를 다지듯 국가 간에도 얼마든지 비무력적인 선의의 경쟁과 상호 협력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요. <팔일> 14편에서 봤듯이 공자는 주나라 시절의 가치 회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북극성과 같은 천자를 중심으로 뭇 제후들이 별처럼 순응하는 평화로운 국가 질서를 공자는 이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국제 질서는 철저히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을 따름이니, 당대의 위정자들에게 공자의 사상은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 몽상가의 이상 정도로 치부될 만했습니다. 


오늘날의 국제 관계에 있어서 힘이란 오직 국방력 만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각 나라의 현실과 욕망을 꿰뚤어보는 통찰력에 근간을 두고 호혜와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혜로운 외교력과 통상력,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국제 질서의 선도자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경제력, 그리고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며 국가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고 세계 시민들의 호감도를 증진시켜 여타 영역들의 시너지 성장을 견인하는 문화력까지, 한 국가가 증명해 낸 역량과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총체화한 힘을 뜻합니다. 


그래서 현대 국가에서는 이 힘을 전략적으로 기르고 활용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리더가 더욱 중요해졌지요. 이렇게 중요한 리더를 선택한 기준으로 듣기에 참 민망하고 구차한 것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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