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자왈 불인자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안인 지자이인
-공자가 말했다. "불인한 자는 고생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편안함을 오래 누리지도 못한다. 인자는 인을 편하게 생각하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
궁핍하고 빈곤하여 갖은 고생을 해야 하는 나날은 누구에게나 힘이 듭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날이 있기 마련이지만, 어질고 선한 사람이라면 이내 마음을 다잡고 좋은 날을 기약하며 다시 인내의 마음을 다지는 법이지요. 하지만 불인한 자는 곤궁함을 달게 감수하지 못합니다.
불인不仁을 '어질지 못한' 정도로 해석하면 맛이 떨어집니다. 어질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은 것이지요. 불인한 자는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을 입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에 자기 자신의 곤궁하고 궁색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나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습니다. 불인에서 우리는 이 '상관하지 않음'을 핵심으로 읽어 내야 합니다. 도덕경 5장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이 균형과 조화를 꾀할 뿐 개입하거나 편애하지 않는 천지의 무위성無爲性을 뜻한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불인이란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성정과 같습니다. 역지사지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것이지요. 소시오패쓰의 전형적인 기질입니다.
어느 정도 성취하면 자기 분수를 알고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지요. 시선을 낮은 곳으로 돌리고 자신의 성취를 덜어 아래로 내려 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인한 자는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니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권력,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도파민에 중독된 채 더 세고 강한 자극과 흥분을 갈구하는 좀비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의 의미를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진 사람은 인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인하게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끼게 되지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인하게 사는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길게 보면 인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득임을, 지혜로운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필귀정事必歸正과 사불범정邪不犯正의 이치를 잘 이해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불인한 언론이 불인한 권력자들을 감싸고돌고 불인한 권력자들은 인자와 지자에게 누명을 씌워 공격하느라 여념이 없지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세계인으로부터 존경 받는 위대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채 불인한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절반의 국민 역시 불인한 자들입니다. 불인한 국민이 나라의 발목을 잡는 한 국민 전체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눈부신 기술 발전 덕에 누구나 손안에 세상의 진실과 대면할 똑똑한 문명의 이기를 들고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절반의 국민이 각성하지 않는 이상, 참혹한 역사는 반복되겠지요. 찬란한 5월의 봄날, 아침 저녁으로 펼쳐지고 있는 해괴한 장면들을 보니 옛 시조 한 대목이 저절로 읊조려집니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