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Jun 14. 2022

일상의 논어 <이인里仁26. final>-욕소辱疏


子游曰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자유왈 사군삭 사욕의 붕우삭 사소의


-자유가 말했다. "임금을 섬길 때 간언이 지나치면 욕을 당하게 되고, 벗과 사귈 때 충고가 지나치면 멀어지게 된다."



자유의 말로 <이인> 편이 마무리됩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처세술 하나를 익히는 데 만족하는 대신 크게 두 개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진심 어린 조언은 언제나 정당성을 갖는가?'입니다. 조언이란 상대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지점에 대해 깨우침을 주고자 말로 돕는(助言) 것이지요. 생각에 도움되는 말을 건네는 것이자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품고 말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내 인식의 옳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흔쾌히 인정하고 수용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영웅 소설 속 주인공들로 채워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늘 신하의 충정을 헤아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재료로 삼는 큰 그릇의 리더는 드물고, 감정의 변화 없이 친구의 쓴소리를 받아들여 성장의 원료로 삼는 죽마고우는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언에 냉담한 리더에게 고언을 지속하면 리더는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내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은 인간의 수만큼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맞지 않는 생각의 영역을 서로 합심하여 채우기 보다는 그것을 사유로 관계를 끊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행동 방식입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이호미 색색 履虎尾 愬愬'의 태도를 권합니다. 리더를 대할 때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처신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친구든 동료든 선후배든 충고보다는 칭찬이 좋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 보이더라도 개입하지 말고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알아서 살아가게 놔두는 것이지요.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접으면 상대의 철학을 존중하게 됩니다. 조언은 딱 한 번으로 족합니다. 상대의 결정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나는 스스로 조언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는가?"입니다.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 그 해결책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조언을 건넬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향해 나의 설익은 생각을 날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고유한 경험의 결합으로 형성된 아집으로 살아갑니다. 선명한 가치관이나 철학이 부재하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그저 세상과 인간으로부터 이해 받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생각의 스펙트럼이 좁으니 세상과 인간을 향한 시야도 넓기 어렵습니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기 주장의 관철에 힘을 쏟습니다. 화합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관계는 소원해지며 물리적 거리도 차츰 증가하게 됩니다.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세상과 타인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갈 뿐입니다. 언론이 조장하는 여론을 상식으로, 정부가 포장하는 정책을 공정으로 믿고 피동적으로 사는 한 존중 받기는커녕 함부로 다뤄지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25-37 동원굿모닝힐 II)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이인里仁25>-덕불고德不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