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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13. 2022

일상의 논어 <이인里仁25>-덕불고德不孤


子曰 德不孤 必有鄰

자왈 덕불고 필유린


-공자가 말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유명한 구절입니다.  


'덕불고'는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의 의미이지요. 그래도 덕 자체를 주어로 삼을 때 맛이 살아납니다. 


이 구절은 <위정> 편 1장(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 이중성공지 / 공자가 말했다. "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것을 따르는 것과 같다")과 함께 읽을 때 공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덕을 갖춘 군자에게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덕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논어의 편집 방향과 공자의 삶, 그리고 논어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 추론은 타당성을 갖습니다. 아래에 <위정> 편 1장의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일 뿐이지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을 법으로 가리는 일은 그래서 옹색합니다. 법이 내뿜는 위압감으로 국민의 마음을 졸아들게 하고 입을 스스로 단속하게 만드는 일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어긋난 톱니바퀴들은 서서히 이가 상하고 마침내 어그러져 와르르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국민들이 어리석어 보여 그럴듯하게 기획되는 이미지 정치에 세뇌될 것 같아도 이미 세상은 그 옛날의 그것에서 한참 달려온 상태입니다. 법치가 국민들에게만 린치처럼 가해질 때 정작 법치의 최우선 대상인 위정자들이 법의 뒤에 숨어서 벌여 온 불공정과 몰상식은 한꺼번에 국민의 분노라는 불에 끼얹어지는 휘발유가 됩니다. 


리더가 워라밸을 즐기며 이미지 메이킹에 전념하고 언론이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동안 국민의 마음은 부덕한 자들에게서 날마다 조금씩 멀어질 것입니다. 결국 그들 곁에는 이전투구에 여념 없는 그들 자신 만이 남아 악다구니를 쓰겠지요. 




<위정爲政1>-위정이덕爲政以德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 이중성공지


-공자가 말했다. "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것을 따르는 것과 같다."



비유법을 써서 덕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신北辰'은 북극성입니다. 북극성은 천구天球의 북극 가까이 자리하고 그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아 예로부터 방향을 잡는 길잡이로 삼았습니다. 덕치의 리더십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기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는 얘기를, 공자는 하고 싶은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무위無爲의 리더십'이라고 할 만합니다. 공자의 눈에 북극성은 다른 별들과 함께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자신으로 머물고 있을 뿐인데 북극성 주위로 늘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모습은 혼란한 시대의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을 것입니다. 


공자가 생각하는 덕치는 한마디로 인간을 믿는 리더십입니다. 리더가 리더로서의 능력과 품격을 갖추고 있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를 알아보고 함께하고자 모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성찰의 리더십입니다. 민심의 획득 여부는 오직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자질과 역량 그 자체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을 불신하고 누구든 자기보다 낮은 존재라고 여기는 자들일수록 법치를 선호합니다. 사람이란 엄히 다스려야 말을 듣고 일을 하게 된다는 인간관이지요. 법을 자신의 입맛대로 사유화했던 과거의 독재자들이나 그들의 충견이 되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검찰과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법치를 강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어떤 짓을 해도 자신들은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지요. 


'무위'를 도가의 전유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하는 것이 곧 무위이기에 덕치가 무위의 개념이라는 것은 명확합니다. 


<<주역>> 2괘 중지곤괘 육오 효사(六五 黃裳 元吉 육오 황상 원길 / 황색 치마니 매우 길할 것이다)에 무위의 리더십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황색 치마는 임금의 덕이 넓게 퍼져나가는 모양에 대한 은유입니다. 수확을 앞둔 황금빛 가을 들녘처럼 리더의 덕이 사방에 넘실거리는 형국입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농부의 얼굴에 가식없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면, 무위의 덕치가 미풍처럼 국민들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리더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국민이 마음속으로 리더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경의로 25-37 동문굿모닝힐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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