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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12.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23>-걸혜乞醯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鄰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했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가자 이웃집에서 구해 주었다고 한다."



성은 미생이요 이름은 고인 노나라 사람이 평소 바르고 곧다고 알려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공자는 그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들어 그의 평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요지는 식초를 빌리러 온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식초가 없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멈췄어야 하는데 굳이 이웃에게서 얻어다 빌려주는 것은 평판 관리 차원의 계산된 행동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속단은 좋지 않습니다. 만일 가난한 혹자가 편찮은 모친 생신상에 모친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기 위해 식초를 얻고자 온 것이라면, 그리고 미생고가 그와 절친한 사이라면 위의 행동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의 언행 하나를 근거로 그의 모든 것을 단정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그 누구도 야박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요. 설사 평가의 대상이 공자와 같은 성인이라도 말입니다.


<<여씨춘추>>에 다음의 일화가 전해집니다.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고생하며 일주일 간 쫄쫄 굶고 있었던 때의 일입니다. 안회는 스승의 끼니를 잇기 위한 쌀 동냥에 이골이 난 제자였지요.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 밥을 지었는데 낮잠을 자다 깬 공자의 눈에 언뜻 안회가 갓 지은 밥을 손으로 한 줌 집어 먹는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안회가 밥상을 차리자 공자가 말하지요. "방금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었다. 깨끗한 이 밥으로 제사를 먼저 지내야겠구나." 안회가 답합니다. "안 됩니다. 솥에 재가 들어가 밥이 좋지 않게 되어 버려야겠기에 제가 한 줌 걷어 먹었습니다." 즉, 안회는 더러워진 밥을 스승에게 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기에 먹은 것이지요. 분명 자기가 먹은 만큼은 자신의 양에서 제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공자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所信者目也 而目猶不可信 所恃者心也 而心猶不足恃 소신자목야 이목유불가신 소시자심야 이심유부족시 / 믿는 것이 눈인데 오히려 눈을 믿을 수 없고, 의지하는 것이 마음인데 마음은 오히려 의지하기 부족하구나!" 이 사례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인군자라도 일주일씩 굶주리다 보면 이성이 본능에 잠식되는 것이 차라리 당연하게 느껴지지요. 오히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곧바로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스승이라는 자가 한심하기 그지없군'과 같이 안회가 생각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갔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속단의 위험성을 잘 보여 줍니다. 안회가 일면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큰 그릇이었기에 다행이지요. 


사람의 언행은 반드시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속단하기 쉽습니다. 속단하면 실수하기 마련이지요. 많은 국민이 기사와 보도 이면의 진실을 보려 하지 않기에 오늘도 국민들의 속단을 조장하는 의도를 숨긴 그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알아서 개돼지와 같은 선택을 내리고 행동하기에 그 눈높이에 맞춰 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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