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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13.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24>-구역치지丘亦恥之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자왈 교언영색주공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익원이우기인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낯빛을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한 태도를 좌구명은 부끄럽게 여겼다. 나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원한을 감춘 채 사람과 벗하는 것을 좌구명은 부끄러워했다. 나 역시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학이>편 3장에 등장했던 '교언영색'이 다시 나왔습니다. 여기에 '주공'이 더해졌으니 '교언영색주공'은 불인不仁한 자들이 예쁨 받기 위해 강자에게 온갖 아양을 떠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간신배들의 전형적인 처세술이지요. 간신奸臣은 충신忠臣의 반대말이니 '교언영색주공'은 곧 충忠이 결여된 자들이 선택하는 행동 방식입니다. 중심中心이 없기에 언제든 약속과 맹세를 내팽개치고 유리한 조건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자들의 특징입니다.   


'익원'은 속으로 품은 원한이 드러나지 않게 숨기는 것입니다. 익은 은닉隱匿, 익명匿名과 같이 쓰이는 글자이지요. 원한을 감추고 접근하여 사귀는 것은 명백히 복수의 의도가 있는 것이지요. 상대의 신뢰를 앙갚음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함께하는 시간동안 아무리 서로 가까워져 우정과 사랑을 나누더라도 결국 과거의 일에 대해 품은 보복 감정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성정입니다. 서恕를 중요시한 공자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겠지요. 물론 때로는 뼈에 사무쳐 복수하지 않고는 결코 풀 수 없는 원한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복수라는 목표에 집중된 인생 여정은 불행으로 점철될 뿐이지요. 


이 구절은 공자는 좌구명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 자신이 충서忠恕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대목으로 봐야 합니다. <이인>편 15장에서 우리는 증자의 입을 통해 공자의 도가 충서로 귀결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신임한 임명권자의 뒤통수를 쳐 권력을 잡은 뒤 추락하는 지지율을 멈추기 위해 보복의 정치를 기획하는 일은 그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 세상이 온갖 추악한 짓들로 가득해도 정치 영역에서의 대의명분 없는 배신과 보복에 성원을 보낼 국민과 타국 정치 지도자들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리더와 팔로워로서 이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지요. 배신자를 싫어하고, 무능한 배신자를 혐오하며, 무능한 배신자의 보복을 증오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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