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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Nov 21. 2022

(D+44) 레지던트 선생님과의 면담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엄마는 계속 잠만 주무신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인지 이젠 코 고는 소리도 제법 우렁차 졌다. 간병인 여사님이 이제 말씀도 잘하신다며 아침에는 엄마가 여사님께 우리 집에 있는 빨간색 예쁜 셔츠를 주시겠단 말씀까지 하셨다고 했다. 10시쯤 약 1시간가량 휠체어를 태워드리는 것을 목표로 병원 1층 복도까지 내려와 한참 돌고 있는데 이모들과 영천 외삼촌이 병원에 오셨다.

혹시나 휠체어 타는 시간과 맞아 엄마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엄마가 다 듣고 있으니 울지 마시고 밝고 긍정적인 표현, 따뜻한 말씀만 해달라고 전화로 당부해 둔 덕분인지 외삼촌과 이모들은 처음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지만 금세 표정을 편안히 하고 엄마의 손을 잡기도 하고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며 이만하면 다행이다,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겠다란 말씀을 해주셨다.

엄마는 잠결에도 가끔 손을 콧줄 쪽으로 가져갔는데 생각보다  목에 힘이 생긴 것인지 머리도 조금 들곤 했고 지난주와 달리 손도 힘이 꽤나 붙어 있었다. 한 주세에 급속도로 좋아진 엄마의 상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전에 휠체어를 1시간가량 탔을까, 기저귀를 갈고 콧줄 점심식사를 드리는데도 엄마는 피곤하신 모양인지 계속 주무시기만 했다. 그때 마침 레지던트 선생님이 오셨기에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여쭈어 보았다. 주치의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부터는 면담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나타난 레지던트 선생님과의 만남이 내게는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단, 아빠의 말씀으로는 이번 주 수요일 엄마는 지하 1층 감마실이라는 곳에서 무슨 검사를 했다고 했는데 그 검사는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땠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의 답변을 요약해보면, 엄마는 지금 수두증이 가장 우려스러운 시기인데 엄마의 상태로 보아 수두증이라고 단정하기도 단정하지 않기도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뇌조조영술이라는 검사를 실시했다고 했다. 뇌조조영술이라는 검사는 뇌 척추액이 잘 흘러내려 가는지를 보는 검사인데 엄마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뇌에서 척추 쪽으로 전혀 물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관찰되지 않았고 이런 경우 수두증으로 보고 션트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테니 그때 일정을 잡아 수술을 진행하면 될 거라고 했다. 부작용이나 예후에 대해 여쭤보니 당연히 뇌에 직접 하는 수술이니 완벽히 부작용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외과에서 진행하는 수술 중에서는 비교적 가볍고 쉬운 수술이며 보통 일주일 가량 예후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은 이번에 검사를 진행하면서 뇌척수 쪽에서 물을 꽤나 뽑았는데 어쩌면 그 때문에 엄마의 의식상태가 확 좋아진 것일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제야 간신히 엄마의 회복이 차도를 보이나 했는데 만약 그 때문에 엄마가 좋아진 것이라면 수술을 진행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집중치료실에서 내려온 이례로 쭈욱 콧줄 식사 때마다 소금물을 드셨다. 잘은 알지 못하지만 몇몇 논문들을 검색해 보니 전해질 불균형 혹은 저나트륨혈증일 가능성도 있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여쭤보니 레지던트 선생님은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콧줄로 죽만 드시기 때문에 당연히 나트륨 수치가 조금 낮은 것이라 식사 때마다 적은 양의 나트륨을 처방한 것이며 일반 식사를 드시게 되면 나아질 것으로 본다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엄마의 출혈부위와 수술 부위, 손상 부위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 모양인지 레지던트 선생님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체로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뒤적뒤적하더니 뇌지주막하 출혈이라고만 답변을 했다. 엄마를 직접 수술하신 분이 아니고 아직 배우고 있는 선생님이니까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대략적으로 궁금한 부분은 다 여쭤 보았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언젠가 교수님을 뵙게 되면 다시 한번 여쭤보아야겠다 싶었다.

레지던트 선생님도 엄마가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며 오전에 엄마에게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라고 여쭈어 보니 엄마가 "온몸이 아프다"라고 대답하셔서, "머리도 아프세요?"하고 여쭤보니 "머리 빼고 다 아프다"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웃으며 돌아갔다.

난데없는 수술 이야기에 나는 마음이 착잡하던 차에 한참 잠만 주무시던 엄마가 눈을 뜨셨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더니 대답을 곧잘 해주신다.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고 약해 나는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래도 제법 컨디션이 좋아진 것만은 확실했다.

간병인 여사님께 말씀드리고 침대에 묶어두었던 손을 풀어드린 뒤 물티슈로 손을 닦아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렸다. 나는 엄마가 주무시고 계신 동안 보호자 침대에 앉아 뇌졸중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엄마가 일어나자 엄마 침대 옆에 놓아둔 내가 읽고 있었던 책들을 관심 있게 보시는 것 같아 엄마 손에 쥐여드리니 책 제목을 한참 바라보셨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와 <고장 난 뇌>라는 책이었는데 제목을 제대로 읽으신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엄마가 제목을 한참 바라본 뒤엔 힘겹게 책을 들고 펼쳐보기 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엄마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니 이럴 때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다. 묵찌빠를 알려주며 해보라고 하니 엄마는 묵찌빠를 곧잘 따라 했다. 내가 웃으며 잘했다고 박수를 치니 엄마도 나를 따라 박수를 쳤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박수에 나는 또 한 번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아직 다리는 힘겨워했지만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해 드리니 엄마는 그다음 스스로 비슷한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했고 그럼 우리는 함께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시키는 것에 꽤나 열심히 따라 했는데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엄마가 깨어서 나와 함께 이야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두세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무리해도 되는 것인지 문득 걱정이 되었다. 한참을 나와 노느라 점심 식사 후 흡입치료와 토닥이도 아직 하지 못한 상태인데 조금만 있으면 곧 저녁시간이었다. 엄마를 쉬게 해 드릴 겸 좀 늦었지만 엄마에게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고는 병원을 나왔다. 뇌출혈,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뇌 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한지도 벌써 44일.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회복되어 가는 엄마인데 또 션트 수술(뇌실 복강 간 단락술)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많이 착잡해 한참을 걸었다.

그래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더 나은 선택 같았다. 수술이 잘되어 지금처럼 엄마의 회복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담 재활병원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선 달달한 게 먹고 싶어 타르트 집에서 딸기 타르트와 에그 타르트를 시켜 먹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다. 집에 계신 아빠에게도 검사 결과와 션트 수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하니 이젠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자고 있는 엄마에게 내일 다시 보자고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난 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는데 돌아보니 가을이 언제 온지도 모를 만큼 저만치로 지나가버리는 중이다. 그런데 또 엄마의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 더디도 흐른다. 


엄마가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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