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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Nov 30. 2022

(D+51) 삭발 그리고 엄마의 예쁜 두상

조금 늦은 아침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부정맥 관련 타 병원 의무기록지를 간호사실에 전달하고는 곧장 엄마에게로 가 휠체어를 태워드렸다. 병동 복도를 지나 다른 층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휠체어를 모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와 곧 주치의 선생님이 오 실 테니 멀리 가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바뀐 주치의는 늘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이었던지라 곧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를 주치의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그냥 우리의 일정대로 움직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날이 추워 병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어디든 병원 안일 텐데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엄마를 휠체어에 태운 뒤 엄마의 손을 잡고 조용한 2층 복도를 돌고 있는데 간병인 여사님께 전화가 왔다. 일요일엔 병원 이발사 아저씨가 일을 하지 않으니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며 마침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아저씨를 불러 엄마의 머리카락을 깨끗이 정리하자는 제안이었다. 엄마의 머리는 쓰러지셨던 날 개두술을 하기 위해 급히 앞부분만 깎여있던 터라 지저분한 황비홍 스타일이었다. 뒷머리가 황비홍만큼 길진 않았지만 앞부분만 갂여 있는 데다 몹시 지저분해 보여 정리를 한번 했으면 했는데 이 참에 이발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발사 아저씨는 이발기를 들고 요래조래 엄마의 머리를 금세 갂아내더니 돈을 받고 유유히 사라졌는데 때마침 오신 주치의 선생님이 수술을 해야 하기에 이렇게는 안된다며 이발사 아저씨를 불러 다시 깨끗이 면도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주치의는 엄마의 손을 덥석 잡더니 "어머니, 조금만 힘내세요! 이번 수술만 하고 나면 정말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늘 불러도 나타나지 않던 주치의였기에 내심 못마땅한 마음이 있었는데, 밝게 엄마에게 기운을 주는 모습을 보니 이내 또 마음이 풀린다. 참 사람 마음이 묘하다. 어쨌거나 주치의 선생님의 말처럼 수술도 잘 끝나고 엄마가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머리카락을 모두 정리하고 면도까지 해 깔끔해지니 우리 엄마 참 예쁘다. 두상도 동글동글 어디 하나 찌그러진 곳이 없다. 아마도 아기 시절에 외할머니를 고생 꽤나 시키셨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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