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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Dec 11. 2022

(D+52) 마취과 선생님의 방문

마취과 선생님이 갑작스레 방문하셨다. 엄마가 내일 받게 될 뇌실 복강 간 단락술(션트 수술)에 대한 동의서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주치의는 엄마가 내일 받게 될 션트 수술은 신경외과의 수술치고는 비교적 가벼운 수술이고 수술 시간 또한 약 2시간 남짓이라곤 해도 다시 뇌를 열어야 하고 머리부터 척추, 배까지 건드려야 하는 수술범위가 꽤 넓은 수술이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마취과 선생님은 엄마가 폐색전증이 있기 때문에 내일 있을 수술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했다. 폐색전증이란 다리에 위치한 깊은 정맥에서 생긴 혈전이 폐까지 올라와 있단 것이고 그렇다는 말은 어디든 혈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의 위험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했다. 혈전 때문에 심근경색 같은 게 발생할 경우 사망까지도 갈 수 있기 때문에 마취과 쪽에서는 혈전 치료부터 하고 나서 수술을 진행하자고 했지만 신경외과 쪽에서는 그대로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으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사전 방어조치를 해두려는 것 같았다.

어제 주치의에게 이미 수술의 위험성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기에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말의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엄마의 주치의는 혈전의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는 위험하지만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마취과 선생님의 어조는 그게 아니었다.

사색이 되어선 아무 말도 못 한 체 굳은 얼굴로 동의서에 사인만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마취과 선생님은 처음 뵙는데 너무 심각한 말씀만 드려서 죄송하다며 멋쩍은 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의학적 지식은 거의 없지만 수두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엄마는 누워있는 기간이 더 길어질 테고 혈전 문제는 오히려 쉽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좋아지려고 하는 수술인데 사망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위험성이 크니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고민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냥 주치의와 엄마를 수술해준 교수님의 판단을 믿고 그대로 수술을 진행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무서워서 자꾸 눈물이 나려는 것을 꼭 참고 엄마에게 수술만 잘되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팔과 손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정밀한 동작은 어려웠다. 그런데 엄마가 힘겹게 팔을 들어 내 마스크를 벗기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때문에 나는 병원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나름 애를 써서 밝게 웃어 보였다. 엄마가 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어 앞으로 쏟아져 내려온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려는 것 같았다. 어설펐고 엄마가 하려던 동작이 잘 되지 않아 내 눈을 찌를 뻔했지만 엄마가 내게 무엇을 해주고 싶었는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걱정 말라고 수술 잘 받고 올 테니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려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라도 모를 일에 엄마는 딸의 얼굴을 제대로 한 번 보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렵고 무서운 사람은 엄마일 텐데 혹여나 나의 두려움이 엄마에게 전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이 쓰라렸다.


무사히 수술이 잘 끝나고 놀라울 만큼 엄마가 좋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내일은 씩씩하게 보내보기로 용기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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