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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Dec 17. 2022

(D+66) 엄마의 발 씻겨 드리기

지난주 나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기에 엄마를 보러 친정으로 내려올 수 없었다. 그 사이 엄마는 콧줄을 빼고 미음을 시작했었다가 연하 검사에 실패하면서 일주일 만에 다시 콧줄 식사 신세가 되었음을 아빠를 통해 전해 들었던 터였다. 그래도 이제 목을 제법 가누고 손에 힘도 제법 들어가면서 션트 수술 후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는 아빠의 말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는 말이 거의 없고 기운도 별로 없었다. 목 없는 휠체어를 탈 만큼 목을 잘 가누긴 했지만 약 한 시간이 가까워져 가자 그조차 힘겨워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속상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수술 전보단 확실히 좋아진 것이긴 하니까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싶기도 했다.

웬일인지 이번 주는 내내 밤잠을 설쳐 수면시간이 짧아 꽤나 피곤했었다. 그래도 어제 엄마를 보고 와선 마음이 놓였을까. 눈을 뜨니 아침 10시가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 병원 갈 채비를 서둘렀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11시가 지나있었는데 엄마는 내일 있을 전원 준비로 아침에 코로나19 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받느라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지 쌔액쌔액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가 주무실 때 얼른 아빠를 모시고 점심을 먹어야겠다 싶어 근처 식당에서 식사까지 든든히 하고 왔음에도 엄마는 여전히 단잠에 빠져있었다. 몇 번을 깨워도 봤지만 엄마는 가늘게 잠깐 눈을 뜨더니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을 보호자 침대에 앉아 책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어서 엄마 휠체어를 태워드리라고 했다. 엄마가 휠체어를 타기 싫다고 내가 물을 때마다 도리도리를 하시고 주무신다며 오늘은 그냥 침대만 바짝 세워둘까 한다고 이야기하니 간호사 선생님은 그건 효과가 없다며 엄마가 휠체어를 타며 용을 쓰고 힘도 쓰고 그래야 하니 힘들다고 거부하더라도 꼭 휠체어를 태우라고 말했다. 귀만큼은 말짱한 엄마이기에 그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다시 물으니 이제는 휠체어를 타겠다 하신다. (귀여우셔)

이번에는 유튜브에서 배운 데로 나 혼자서 엄마를 휠체어에 태웠다. 엄마의 다리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상체를 내게 기대게 한 다음 엄마의 팔로 나를 껴안듯 하고 나는 한 팔로 엄마의 등 쪽 바지춤을 잡아 일으켜 세운 뒤 몸을 살짝 회전시켜 휠체어에 앉혔다. 넷이서 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긴 했지만 요령도 힘도 꼭 필요하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달리기로 하체 쪽 근력은 단단히 다져두었다지만 상체 쪽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무근력을 자랑하는 나였는데 이젠 상체 근력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때마침 간병사 여사님께서 이왕 이렇게 휠체어를 탄 김에 엄마 발을 좀 씻겨드리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오우! 너무 하고 싶던 일이라 당연히 그러자 곤 하고 간병사 여사님을 따라 수건과 비누 대야를 들고 장애인 샤워실로 향했다. 간병사 여사님은 양말까지 벗어 두고 물의 온도를 맞춰 때수건까지 챙겨 엄마의 발과 다리, 팔과 손을 싹싹 씻어 주셨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 오랜만인 데다 많이 개운했는지 눈을 정말 동그랗게 뜨고는 팔과 다리를 살짝살짝 들어 씻는 데에 협조해 주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로션까지 듬뿍 바르고 나서 모자를 씌우고 스카프를 두른 다음 담요를 무릎에 덮어 병원 복도 여기저기를 돌았다. 복도를 돌며 엄마에게 이제 내일이면 엄마는 이 병원을 퇴원하고 N병원으로 갈 것이며, N병원은 친정집이 위치한 도시에서 재활로 가장 유명하며 어린이 재활까지 하는 전문병원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혹여나 엄마가 요양병원 같은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실까 봐 조금 과장해서 좋은 이야기만 하긴 했지만 딱히 또 거짓말을 한 것은 없었다.

보호자 간병이 가능한 병실은 자리가 없어 한두 주 정도는 간호간병실로 가게 되겠지만 자리가 나는 데로 내가 회사를 휴직하고 엄마를 돌볼 예정이니 그때까지 힘내서 열심히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어야 한다고도 이야기해주었다.

딸이 계속 옆에 있어준다는 것에 힘이 났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물속에 발을 담그고 깨끗이 씻은 개운함 때문에 힘이 났을까. 엄마는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무척 적극적이었다.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있었으며, 휠체어를 멈춰두고 발 들어 올리기를 해보잔 나의 제안에 20번씩 2세트, 허리를 바로 세우는 것도 10번씩 2세트씩 해내었다. 심지어는 휠체어를 잡고 일어설 모양새로 힘을 주기도 했는데 다리 근육이 너무 빠져있는 지금은 무리인 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도 있을 듯하여 그건 만류하였다.

엄마의 활활 타오르는 재활의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다. 엄마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힘이 났다. 오늘은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다. 

고마워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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