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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Dec 19. 2022

(D+67) 재활병원으로의 전원

오늘은 엄마의 대학병원 퇴원일이다. 그리고 A 재활병원에서의 첫날이기도 하다. 간병사 여사님이 오늘, 퇴원 시점까지 계속해 주시길 바랬기에 어제 여사님께 의중을 여쭤보았으나 여사님은 약속이 있어 나오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간병인 여사님은 두 분이서 교대로 하시기에 다른 여사님께 전화를 넣어볼까 했지만 얼마 전 바뀐 이분은 엄마에게 살짝 함부로 하는 느낌이 있어 좀 꺼려졌다. 어차피 휴직하고선 내가 엄마를 간병할 예정이니 아빠에게는 내가 혼자서 한 번 해보겠노라 했지만 사실 마음은 불안 불안했다. 그간 기저귀 갈기와 체위변경, 휠체어 태우기 등은 여러 번 해보았기에 자신이 있었지만 콧줄 식사(피딩)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침 아침에 도착하니 간병사 여사님이 엄마의 콧줄 식사를 마무리하기 직전이었다. 유튜브로 몇 번 보았고 어제 간병사 여사님이 하시는 것을 유심히 봐 두었기에 제가 해보겠노라며 서투른 솜씨로 물에 개 놓은 약과 물을 차례로 주사기에 넣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튜브를 꺾어주었다. 처음 하는 피딩이라 시간도 많이 걸렸고 살짝 긴장했던 모양인지 땀도 났다. 하지만 어쨌거나 직접 한번 해보니 이제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지나가던 간호사 선생님도 내가 피딩을 하고 있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인지 지켜보다간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기침을 하거나 호흡이 힘들어지면 즉시 피딩을 중단할 것, 피딩 전 콧줄이 더 빠지거나 하지 않았는지 꼭 확인할 것 같은 것이었다.


재활병원인 A병원에서 휠체어와 차를 보내주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3시경이라, 오전 시간에 느긋하게 병원 퇴원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보험 관련 서류는 병원 측에서 제시간에 준비가 되지 않아 발급을 받을 수 없었지만, 2주 뒤 있을 외래진료가 있으니 그때 받는 것으로 하였다. 약 2개월 조금 넘게 지내며 청구된 병원비를 수납하는 것과 처방약을 받는 것, 전원 관련 서류를 받는 것을 끝으로 퇴원 준비는 무난히 끝났다. 


약 3시 정도가 되어서야 A병원 차가 도착했는데,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장치가 그 차에는 마련되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재활의학과 선생님의 진료를 보았는데 엄마는 연하 치료, 언어치료,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진행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엄마의 컨디션을 봐가면서 재활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재활의학과 선생님께 어제 엄마가 종이에 쓴 글자를 보여 드렸는데 선생님은 아무래도 인지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차를 타고 오는 것이 많이 힘드셨던 모양인지 병원에 도착하고선 내내 목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재활의학과 선생님의 지시도 대충대충, 엄마는 무엇인가 해 보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속상했지만 오늘은 퇴원 후 병원 이동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었으니 엄마 입장에선 피곤하실 만도 한 것 같았다. 얼른 쉬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피검사, 심전도 검사, x-ray 및 ct촬영까지 해야 할게 많았다. 모든 것들에 끝나고 나서야 엄마와 함께 배정받은 병동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만, 간호간병실이기에 간병사 여사님이 나와 엄마를 병실로 모시고 가 버리곤 나는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면담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쓰는 작업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입원 상담을 할 때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그러려니 하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속으로 이 병원을 선택한 것에 좀 후회가 되었다. 그 이유는 간병사 여사님 한 분이서 4인실 병실 2곳을 관리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대충 둘러보기로는 엄마만큼 위중하신 분이 없어 보여 가능할 것도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서 여덟 명은 너무 많다 싶었다. 


A병원이 아니다라도 간호간병실을 택했다면 비슷할 터였다. 왜 뇌질환 카페의 보호자들이 거동이 불편하고 인지가 좋지 않을 경우 꼭 보호자가 간병하거나 일대일 간병을 하라고 추천했는지 이제야 백번 이해가 되었다. 조금 더 다양한 병원을 꼼꼼히 확인해보고 병원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나 경솔했다 싶어 계속 후회가 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시 병원을 옮기는 것도 엄마에게는 부담이 될 터인데 하루라도 빨리 보호자 상주가 가능한 병실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곧 크리스마스에 새해가 다가오고 있으니 한두 주면 되리라 기대해 보아도 될 거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버려 두고 온 마냥 마음이 편치 않아 서울로 올라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좀 더 빨리 휴직을 결정하고 엄마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걸 나의 늦은 결정이 너무 후회스러운 밤이었다. 자주 전화를 드려 엄마의 상태를 여쭤보고 어서 빨리 보호자 간병이 가능한 병실을 받을 수 있도록 자주 체크하는 수 밖엔 없겠다 싶었다.


그래도 재활만큼은 엄청 유명한 곳이니까, 엄마가 잘 버텨주기를 바라본다. 

엄마, 조금만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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