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03. 2023

(D+83) 전원 후 첫 번째 외래진료

사설구급차 이용기

대학병원을 나온 지도 벌써 2주나 지난 모양이다. 벌써 외래진료 날이라니. 재활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혹여나 외래진료가 엄마에게 무리가 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진료일을 미루면 어떨까 조금 고민했지만 엄마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피곤해 보이지도 쳐지는 느낌도 없기에 그냥 그대로 외래진료를 가보기로 했다.


간호사실에 얘기하니 비용은 따로 내야 하지만 조금 할인된 가격에 사설 구급차를 섭외해 주겠다 하였다. 외래진료 당일, 말씀드린 시간에 맞추어 운전자와 보조원으로 보이는 두 분이서 후송용 침대와 담요를 가지고 병실까지 올라와주셨다. 겨울이라 날이 추우니 감기라도 들면 어쩔까 싶어 환자복 위에 얇지만 따뜻한 등산용 잠바를 입혀드렸는데, 두 분이서 후송용 침상에 엄마를 눕혀 고정한 뒤 담요를 덮어 빠르게 이동한 데다 차 안도 꽤나 따뜻해서 감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다행이었다.

엄마와 나는 사설 구급차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빠르게 병원에 도착했기에 미리예약해 둔 CT촬영까진 여유가 있었다. 1층 커피명가에 들어가 적당한 위치에 엄마가 탄 휠체어부터 자리를 잡고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딸기 조각케이크를 주문했다. 며칠 만에 나온 밖이 또 병원이건 살짝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커피와 딸기케이크의 맛은 일품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커피 향도 좋았고 케이크는 나의 기분이 좋아질 만큼 충분히 달콤했다. 1층 커피명가는 올 때마다 너무 비싼 느낌이 있어 이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적엔 주로 2층 커피집만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맛 간의 여유시간 동안 호사를 누려보아도 좋겠다 싶었다.

CT촬영도 교수님의 외래진료도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끝났다. 교수님께 엄마가 폐렴으로 한 주 동안 다른 병원에서 폐렴치료를 받느라 재활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인지기능이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교수님은 CT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시 재활을 받기 시작했으니 아직은 더 두고 볼 일인 것 같아 나도 더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내게 3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말했는데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재활병원을 정할 당시, 서울로 엄마를 모시려고 여러 군데를 알아보고도 2주에 한 번은 외래진료를 보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서울이 아닌 이 대학병원이 있는 지역 소재 재활병원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음 외래진료가 3개월 뒤라면 엄마를 서울로 모셨을 텐데, 그랬다면 아이들도 조금은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텐데 싶어 못내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쨌거나 엄마는 3개월 뒤에나 진료를 봐도 될 만큼 괜찮다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폐렴으로 인해 지난 일주일 동안 재활 없이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던 것이 문제였던 모양인지 엄마는 인지 기능이 확 떨어져 있었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인지가 좋지 않았는데, 때때로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보호자나 간병인 교대가 어렵고 면회조차 되지 않으니 간병인 여사님이 기저귀 갈기와 콧줄식사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 그렇다 한들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게다가 알려고 한데도 결코 알 수도 없는 일이니 계속 의심만 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과거를 되짚어 버리는 건 그냥 포기해 버렸다. 그저 앞으로 엄마와 함께 재활을 열심히 받아보는 수밖에.


외래진료는 금방 끝이 났지만 보험청구용 서류를 떼고 처방받은 약을 찾고 오늘 촬영한 CT영상을 발급받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래도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온 데다 진료시간도 짧아서였는지 엄마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타고 왔던 사설 구급차를 불러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는데도 겨우 점심 무렵이었다. 오전 재활은 외래 진료 때문에 모두 빠졌지만 오후 재활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듯했다. 긴 아침이었지만 무사히 해야 할 일들을 완수해서 인지 마음이 푹 놓였다.

다음번 외래진료는 3월 말이 될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해서 다음번에는 사설 구급차가 아닌 내 차로 엄마를 모시고 외래진료를 본 뒤 복귀하면 참 좋겠다 싶다. 그때쯤엔 콧줄도 떼서 나간 김에 함께 식사도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을 테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D+82) 재활병원에서의 첫걸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