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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Dec 30. 2022

(D+82) 재활병원에서의 첫걸음

때수건이 없어 살짝 아쉬웠던 침상목욕

어제 늦은 시간 병동을 배정받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런지 오늘은 하루종일 이런저런 검사 스케줄이 잡혀있어 바쁘게 보냈다. 오전 시간에는 지하로 내려가 채혈, 소변검사, 심전도, 방사선 검사, 신경근전도 검사를 하고 난 뒤 3층으로 이동해 작업평가와 운동평가를 진행했다.

지난 일주일간 폐렴 치료 때문에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종일 누워서만 지낸 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한 주 동안 간병인여사님 한분과만 지내서인지 내가 느끼는 엄마의 인지상태는 대학병원에서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에 한 평가 기록지를 들고 오후에 재활의학과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때도 엄마는 묻는 말에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 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선생님이 나를 가르치면서 누구냐고 엄마에게 묻자 엄마는 나를 한번 쳐다 보고는 질녀라 답했다. 초반에 잘 모를 적에는 엄마에게 섬망이 올까 싶어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밤에 잠을 깊이 자지 않는 것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조용조용했고 폭력적이거나 하는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았. 하지만 그렇다고 협조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애매모호한 엄마의 반응은 시종일관 "시큰둥" 그 자체였다. 여하튼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자 곧 엄마의 재활 프로그램이 결정되었는데, 연하치료, 작업치료, 물리치료가 주인 듯했다.

본격적인 치료의 시작은 내일부터 인 듯하여, 이참에 엄마의 침상목욕을 한번 해드려야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같은 층 내 공용 목욕실에 침상목욕이 가능한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혼자선 너무 무리인가 싶어 걱정스럽긴 했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마의 온몸에서 작은 각질이 먼지처럼 날렸기에 매일 씻어 드리는 팔과 다리만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특히 재활 일정을 보아하니 생각보다 빠듯해 보여 한동안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주중에는 오전과 오후 시간이 치료 스케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기저귀 갈기와 식사시간까지 고려하면 주말 오후나 되어야 통목욕이 가능할 듯싶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첫날이라 평가 말고는 특별히 해야 할 치료가 없으니 보온에 신경 쓰며 여유 있게 씻어 드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 사용해보는 목욕용 침상이라 조금 낯설어 엄마를 모시고 가기 전에 한참을 요리조리 만져보며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난간만 올리고 내릴 줄 안다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 휠체어를 태워 엄마를 침상으로 모시고 머리부터 감긴 뒤 거품을 내어 문지르고 헹궈 내니 엄마는 꽤나 기분이 상쾌해진 모양이었다. 때수건을 미쳐 준비해오지 않아 나는 각질들을 마음만큼 잘 씻어내지 못해 살짝 아쉬웠다. 때수건으로 준비해 이번 주말에는 꼭 여유 있게 한번 더 씻겨드리자고 다짐하며 물기를 닦고 옷을 입혀드렸다.  

저녁에는 병원 구경을 해보자고 엄마를 꼬드겨 휠체어를 태우고 병원 여기저기를 한참 돌았다. 침대에서는 아무리 바로 세워 놓아도 가끔 소화가 안된 듯 옅은 색의 액체가 달려 나오곤 했는데 휠체어를 타고나면 그런 게 없었다. 아무래도 소화에는 휠체어를 타는 것만 한 게 없는 듯했다. 대학병원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엄마가 휠체어를 타며 나름의 용을 쓰는 것도 몸의 쓰니 소화가 잘 되는 것인 듯했고 목과 팔 몸통의 힘을 기르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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